아이들이 이성에 눈뜨기 시작하는 때는?

교실 속 이야기

by 정교윤

2학년 교실,


하진이와 유성이는 꼭 사귀는 것 같다. 쉬는 시간에 늘 붙어 있었다. 등교도 같이 한다. 점심 급식을 먹고 나올 때도 같이 나와서 검사를 받고 나간다.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았다. 물어봤다가 그 후 내 대답을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귄다고 하면 ‘그래, 잘 사귀어 봐라.’, ‘아직 2학년이, 사귀는 건 좀 그래.’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모른 체 했지만 걱정은 되었다.


유성이는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할 만큼 하진이에게 빠져있었다. 수업 시간에도 하진이의 뒷모습을 계속 쳐다봤다. 3월 유성이를 처음 본 이미지와는 정말 달라졌다. 내가 한 말을 잘 듣지 못해서 다시 물어보곤 했다.

“선생님, 어디 하라고요?”

하루에도 몇 번을 그렇게 물었다. 아침 자습 시간에도 독서나 받아쓰기 연습을 하지 않고 멍하지 앉아 있기 일쑤였다. 한 번은 유성이가 수업 시간 일어나 춤을 추고 있길래, 멈추고 앉게 했다. 하교 후 유성이와 상담을 했다.

“유성아, 아까 선생님이 수업 시간 뭐라 해서 당황했지?”

유성이는 얼굴이 빨개졌다.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성아, 요즘 수업시간에 집중을 못하는 것 같은데, 다른 문제가 있니? “

“아니요.”

유성이는 별일 없다는 듯 말했다. 수업시간에 더 열심히 해보자며 보냈다.


어느 날 쉬는 시간, 유성이가 내게 와서 물었다.

“선생님, 언제 집에 가세요.? “

나는 유성이가 나를 따로 만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말했다.

“오늘은 3시 30분에 나갈 거야.”

“네.”

하고 돌아서는 유성이를 아차 싶어 다시 불렀다. 그냥 내가 퇴근하는 시간이 궁금한 게 이상했다.

“하성아, 무슨 일 있어? 선생님한테 할 얘기라도. “

“아니요. “

또 얼굴이 빨개셔서 바로 돌아섰다.


두 시간 후, 이번에는 하진이가 와서 물었다.

“선생님 몇 시에 퇴근하세요.”

하진이의 같은 질문에 나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둘이 무슨 짓을 하려는 거 아니야! 벌써…’ 아는 아찔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최근에 모 초등학생들이 임신을 하고 유사 행위를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왔다.

“언제 나갈지 모르겠어.”


하교 시간, 아이들이 교실에서 나가고 있을 때 하진이를 따로 불렀다. 아이들이 모두 나간 걸 확인하고 하진이와 일대 일 상담을 시작했다.

“하진아, 아까 선생님 퇴근 시간은 왜 물었어?”

대답하지 못하는 하진이에게 경찰관이 되어 유도 신문 하기 시작했다.

“교실에서 뭐 하려고? “

하진이는 입술을 깨물며 당황했다.

“하진아, 지난번에도 왔었잖아. 시시티브이 저기 있잖아. 선생님 다 봤어.”

완벽한 거짓말과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요?”

하진이는 걸려들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엄청난 일이 내가 퇴근 한 시간 이후에 있었다는 사실을.

“선생님 입으로 말하지 않을게. 내가 말하면 너를 혼내는 게 되고 네가 말하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니, 나는 너의 용기를 칭찬해 주고 부모님께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갈 거야.”

“유성이랑 놀았어요.”

“놀기만 한 게 아닐 텐데…“

나는 19금 대답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사실은… 선생님 의사에 앉아 봤어요.”

“또?”

“선생님 서랍도 열어봤었요. “

“더 말해요. 선생님은 다 아니까.”

“의도도 빙글빙글 돌리고 선생님 책상 밑에도 들어갔어요.”

“그리고?”

“그게 다예요.”

정말 그게 다인 듯했다. 19금을 생각했던 나는 하진이의 순진함에 내가 너무 앞서 나간 건 아닌가 생각했다. 하성이에게 유성이와의 관계에 대해 물어보니 자주 집에 와서 같이 논다고 했다. 남자와 여자는 조심해야 한다며 당부했다.


다음날, 유성이를 불렀다.

“유성아, 요즘 누구에게 가장 잘 보이고 싶어? 선생님이야? “

“선생님이랑 하진이요.”

“아, 하진이에게 왜 잘 보이고 싶어? “

“좋아해요.”

유성이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많이 좋아하는구나. 선생님도 니 나이 때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 때문에 학교 오고 그랬어. 1학년 때도 하진이를 좋아했니? “

“아니요. 1학년 때는 다른 애를 좋아했어요.”

“그럼, 1학년 때 그 아이를 좋아하는 마음과 하진이를 좋아하는 마음은 비슷해?”

“아니요, 1학년 때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컸어요.”

도대체 1학년 때 얼마나 좋아했던 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지금 유성이는 하진이를 눈물이 날 정도로 좋아하고 있고 방과 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유성이는 돌봄 교실을 하는 하진이를 매일 데리러 오고 등교도 같이 하고 쉬는 시간을 매일 함께 하는데.


어느 날, 하교 전 자리 정돈 시간이었다. 갑자기 유성이는 바로 옆에 있던 유미를 끌어안았다. 또렷이 보았다. 유미는 당황해했고 유성이를 밀었다. 그 모습을 또렷이 본건 나뿐만 아니었다. 맨 앞 줄에 있던 하진이도 봤다. 순간 소극적인 태도, 작은 목소리의 하진이는 돌변했다.

“야!, 유미를 왜 끌어안아!”

멀리 있던 유미도 당황해서 하진이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유성이가 갑자기 나도 놀랐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유미가 여자 친구 있는 유성이와 딴짓을 하다 들킨 것 같은 말투, 하진이에게 변명하는 듯한 말투였다.

하진이는 담임 선생님도 반 애들도 눈에 보이지 았았던 것 같다. 유성이는 얼굴이 빨개졌고 머뭇거렸다. 나는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빨리 하교 인사하고 내 보냈다.


아이들의 이성에 대한 관심은 참 다양하다. 아이마다 관심이 트이기 시작하는 시점도 다르고, 표현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우리 반 2학년 아이들 중에 한 여자아이는 키가 작고 귀엽게 생겼다. 밝고 상냥한 성격이라 그런지 남자아이들이 옆자리에 자주 앉는다.

사실 교실에서는 흔치 않은 일인데, 이 아이에게는 그런 상황이 자주 생긴다.

신기하게도 누가 옆에 앉거나, 장난삼아 안기려고 다가가도 그 아이는 별로 싫어하는 눈치가 아니다. 오히려 함께 웃고 즐거워한다.


상담 시간에 이 이야기를 꺼냈더니, 엄마도 웃으며 말씀하셨다.

“작년 1학년 때도 그랬어요. 남자 애들이 안아도 얘는 웃고 있어요. 좀 걱정돼요.”

엄마는 딸아이의 이런 성향을 알고 계셨고 조금 걱정 하셨다. 가끔은 안겨오는 남학생도, 안기면서 웃고 있는 여학생도 또래보다는 이성에 대해 좀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이런 부분은 아이의 성향이다. 아이마다 다르다.


고학년이 되면 또 달라진다. 어떤 여학생은 남학생과 친하게 지내며 웃고 떠들지만, 어떤 아이는 눈길도 주기 싫어하고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기도 한다.

이성에 대한 호감도, 거부감도 모두 아이들의 자라나는 감정의 한 모습이다. 교실에서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가 얼마나 다양한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어른은,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단정 짓지 않아야 한다. “이른 것 아니야?” 혹은 “이러면 안돼는데?“라고 말하기 전에, 그저 아이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를 조심스레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어른의 시선으로 보면 장난 같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겐 그 순간이 진심일 수 있다. 그 진심을 너무 빠르게 재단하거나 꾸짖기보다는, 마음의 흐름을 알아차리고 함께 이야기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어른은 아이의 감정을 배워가는 과정을 응원해주는 조력자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관계를 맺는 방법, 감정을 나누는 법을 조금씩 익혀간다. 그래서 어른은, 다정하게 묻고 조용히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동시에, ‘경계’에 대해 조심스럽게 알려주는 것도 꼭 필요하다.

아이들은 아직 관계의 거리, 감정의 선을 잘 모른다. 좋아하는 마음과 싫은 마음, 친근함과 불편함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배우는 중이다. 그래서 어른은 “이건 안 돼”라고 단호하게만 말할 게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것도, 몸을 지키는 것도 모두 아이가 배워야 할 중요한 삶의 기술이다. 그 기술을 익히는 과정에서 어른은 감정의 조율자이자, 경계의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다정하지만 분명하게, 조심스럽지만 놓치지 않게. 그게 바로 어른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