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민이는 꿈틀이 젤리 한 봉지를 가지고 와서 내 책상에 툭 놓는다. 나 먹으라는 줄 알고 선생님이 젤리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냐며 웃었다. 이 멘트가 끝나면 '마음만 받을게.'라고 멋지게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선생님은 왕꿈틀이만 드시고, 나머지는 친구들 주세요."
사실 1학년 우민이는 친구들에게 관심이 없는 아이다. 밤새 게임하고 학교에 와서 엎드려 쉬는 시간에 엎드려 있는다. 내 잔소리에 우민이는 씽 꺼풀이 없는 작은 눈으로 사람 인자를 세기고 지우지 않았다. 이날은 엄마는 일가시고 할머니가 데려다줬다고 했다. 할머니가 슈퍼에 데리고 가 하나 사주셨다고 했다. 학교 끝나고 먹으라는 내 말에도 자기는 많이 먹었다며 친구들을 주겠다고 했다.
어제 우민이는 미술 과제를 시간 내에 끝내지 못했다. 늘 괴물, 캐릭터를 그리는 우민이에게 가을 풍경이라는 주제는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스케치도 한참을 있다 시작했다. 색칠을 반밖에 하지 않았는데도 다른 친구들의 완성된 작품은 칠판에 걸리기 시작했다. 우민이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다 한 친구 중에 한 명이 큰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우민이 도와줘도 돼요?"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작품을 끝낸 친구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더니 5명이서 우민이의 색칠을 도왔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우민이는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우민이 작품은 협동화가 되어 버렸다. 색칠을 도와준 친구들이 우민이 작품을 칠판에 붙이면 말했다.
"와, 멋지다."
색칠을 도와준 친구들은 우민이의 작품을 보며 감탄했다. 이빨이 많이 썩어 잘 웃지 않는 우민이는 이를 활짝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어제의 일이 고마워서 우민이는 젤리를 가지고 왔을까. 밤새워 게임하느라 쉬는 시간에는 줄 곳 엎드려 있는 우민이다. 친구들과 잘 놀지 않고 관심도 없어 보인다. 나는 이런 우민가 준 젤리를 친구들과 직접 나눠 먹게 하고 싶었다.
"우민아, 이따 하교 인사하고 우민이가 직접 나눠주자."
우민이는 알겠다 하며 다시 가져가 가방에 넣었다. 하교 인사 후 우민이는 젤리의 존재를 잊어버렸는지 나눠주는 것이 어색한지 젤리를 꺼내지 않았다.
"우민아, 젤리!"
나는 그걸 꼭 우민이가 나눠줬으면 했다. 주섬주섬 꺼내 친구들 얼굴도 보지 않고 하나씩 무심한 듯 나눠주었다. 늘 무기력한 우민이가 친구들과 무엇인가를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친구들도 환호성을 지르며 받아먹었다. 평소에는 허용되지 않는 간식 나눔에 아이들은 나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더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방과 후에 우민이가 젤리를 가지고 와서 친구들에게 나눠 준 이야기를 선생님들에게 했다. 우민이를 항상 염려하던 보건 선생님은 우민이의 행동에 기뻐하셨다. 옆반 선생님은 이 이야기를 듣고 간식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셨다. 반에 예린이라는 아이가 있는데 학부모님이 전화 와서는 반 친구들 간식을 보냈는데 예린이가 직접 모두에게 나누어 줄 수 있게 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 듣는 일이었다. 학부모의 의도는 알겠다. 하지만 모두에게 공평해야 하는 학교에서 예린이만 허용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옆반 담임선생님은 방과 후에 교실 밖에서 하나씩 나눠 주기로 학부모와 예린이에게 말했다고 한다.
함께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들은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린이 엄마의 의도를 교실에서 다른 방법으로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토의했다. 선생님들은 학부모의 과한 사랑을 염려했다.
예린이가 주는 간식과 우민이가 주는 간식에는 차이가 있다. 우민이 먹으라고 할머니가 사준 젤리 한 봉지로 친구들과의 소통을 시작했다. 작은 젤리 한 개로 친구들은 행복했다. 하지만 예린이가 주는 간식은 엄마가 예린이를 위해 준비해 준 간식이다. 꼭 친구들에게 직접 하나씩 나눠주는 이벤트를 만들어 달라는 것은 친구들을 위한 것이 아닌 예린이를 위한 것이다.
예린이 엄마의 요구는 자식을 위함이다. 친구들과의 잘 지내게 하기 위안 엄마의 마음일 수 있다. 이런 엄마의 사랑이 커질수록 아이의 세상을 줄어든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많은 기회를 가진다. 친구에게 잘못을 할 기회도, 사과를 할 기회도, 오해를 풀기 위해 스스로 방법을 찾을 기회도 가져야 한다. 경험을 통해 아이는 알게 되고 스스로 발전하기도 한다. 어른이 굳이 나서지 않아서 아이들은 자식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배워나가고 있다. 아이의 세상이 커질수록 더 단단하게 자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