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하얗고 불편한 감정이 생기면 몸이 반응하는 예민한 유진이는 평소와 다르게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와서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 다른 반에 민정이라는 친구가 있는데요. 그 친구가 갑자기 절교하제요. 태권도도 같이 다니고 유치원 때부터 친한 친군데. 갑자기 절교하자하고 모른척 해요."
유진이 같이 마음이 유리장 같이 얇은 아이가 이런 소릴 들었으니, 얼마나 불안하고 걱정할까.
4년 전, 같은 2학년 담임을 했을 때 생각이 났다. 지금은 반 아이들이 20명 여자 아이가 반이지만 그때는 6명 중 여자 아이가 2명인 반이었다. 2학년은 한 반뿐이 시골 작은 학교 였다. 셋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둘 밖에 없는 반에서 한 명이 일방적으로 '절교하자'라는 쪽지를 건냈다. 상대 친구는 엎드려 울고만 있었다. 이 작은 학교에서 친구도 몇 없는데 절교하자니. 둘을 불러 이야기 했고 후에는 잘 지내게 되었다.
고작 2학년 아이들 속에서 우정이 중요하다. 중요하기에 절교라는 단어가 오고 가는 것이다. 친구 관계가 중요하지 않다며 굳이 친구를 끊어낼 이유도 없다. 고학년이 되면 친구 관계는 더욱 아이들의 삶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 5학년 담임 때, 남자 아이들의 친구 관계도 여학생 못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운동장에서 남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A학생은 발로 축구공을 세게 찼다. 그 공이 B정강이에 맞았고 그 곳이 튀어서 C학생 얼굴을 쳤다. 안경이 부러졌고 눈 주변에 타박상을 입었다. C학생은 인기가 있는 남학생이었다. C학생 주변에 친구가 늘 많았다. 이에 비해 B는 인기가 없어고 축구를 잘 하지 못했다. 일은 뒤늦게 터졌다. C와 친한 아이들은 단톡방에서 누구의 잘못인지 토론이 벌어졌다. 발로 찬 A의 잘못인지, 정강이에 맞아 튕겨진 B의 잘못인지. 이 단톡방 안에는 축구공을 찬 A도 포함되어 있었다. A가 있었기에 잘못은 단톡방 안에 없는 B에게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중에는 B의 다른 행동까지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알게된 A 엄마는 사이버 폭력이라 생각했고 학교 폭력으로 신고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했다.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A는 운동으로 진로를 결정한 상태에서 학교폭력으로 신고되어 연루되면 아이의 진로에 문제가 될까봐 걱정되었다. 반 전체 학부모 알림장에 단톡방을 없애고 학교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교육으로 마무리 했다. 이 일로 남학생들도 친구 관계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 할 수 있음을 알았다.
이 사건은 아이들의 진짜 친구 관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학창 시절에 진짜 우정으로 지금까지 그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관계는 많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진짜 우정을 나누고 싶어 한다.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마음이 있다. 바로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 한다. 이 두가지의 마음이 혼재되어 학창 시절을 얕은 파도처럼 보내는 아이가 있는 반면 해일처럼 심각하게 보내는 아이들도 있다. 이 두가지 마음 어떤 마음이 더 클까. 바로 혼자가 되는 것이다. 혼자가 되는 것을 스스로 다행히라 여기며 받아들이는 아이는 없다. 그런 아이가 있다면 오히려 심리 검사를 해보거나 상담을 진행 할 것이다. 친했던 친구가 어느날 모른채하고 ‘절교 하자.’는 쪽지를 보내고 나를 두고 다른 친구와 귓속말을 주고 받는다면 그때 부터 아이는 걱정한다. ‘내 이야기를 하고 있진 않을까.’ 점점 나머지 친구들까지 나에게서 멀어져 저 친구들과 내 이야기를 하진 않을까. 두려워 진다. 이럴 때는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하지만 당하는 아이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부터 생각하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그 친구를 달래거나 왜 나를 모른척 하는지 물어 보고 싶어한다. 아이는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기 힘들어 한다. 나를 모른척 하고 내 뒷담화를 하며 나를 욕하고 있는 친구에게 이유를 물었다가 관계가 더 악화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은 주변 친구들에게 그 이유를 묻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친절하게 대화를 나눠 준다. 안심이 된다. 그러면서 더 그 이유를 묻고 다닌다. 이때 가장 안좋은 상황은 대답해 준 친구들이 다시 상대 친구에게 가서 “걔가 니 이야기를 하고다녀.”하고 하며 뒷담화를 한다. 그럼 더욱 관계를 악화되고 이 친구는 점점 저 고립되고 더 큰 두려움이 삶을 지배한다.
이것은 마음의 생존때문이다. 소속감을 느껴야 안전된다. 아이들은 고립되지 않기 위해 뒷담화과 무리 짓기를 한다. 어른이 나서서 대화를 주도하면 몇 명의 아이가 용기 내어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사과 시키고 다시 잘 지낼 수 있게 돕는다. 이렇게 해서 일이 해결되면 좋겠지만 또 뒤에서는 용기 내어 말한 아이를 뒷담화 하고 관계는 아무도 모르게 어둠 속에서 더 악화될 수도 있다. 용기 낸 아이들은 안도하고 있다가 더 큰 고통으로 되돌아 온다. 용기 내어 말한 아이들은 피해자일 가능성이 크고 사과한 친구는 가해학생이 된다. 제대로된 공감과 이해가 모두에게 돌아간다면 좋겠지만 가해한 학생이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꼴이 될 수 있기에 가해 학생은 더더욱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찾고 부정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아이들의 친구 관계는, 마치 의자 하나를 빼고 돌며 앉는 게임과도 같다. 누구든 한 명만 앉지 못하면 된다.
내가 그 자리에만 앉을 수 있다면 괜찮다. 오늘은 내가 웃지만, 내일은 내가 그 한 명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 속에서 아이들은 애써 웃는다. 그게 학교에서,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남는 방식이다. 이 절박한 생존 방식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을 지키고 있다. 우정은 그저 따뜻하고 예쁜 말이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때로는 그 말이 가장 아프고 차가운 단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