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불확실성을 견디는 것
우리는 종종 음모론과 가짜뉴스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보며 비웃습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그러한 상황에 빠졌을 때는 이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마치 보이스피싱 범죄에 당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특히 이성에게 인기가 많은 상대와 썸을 타게 되었을 때, 불안과 의심을 넘어 음모론자가 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관계이지만 동시에 두려움과 불안함을 낳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건 과거 저의 경험담이기도 합니다.
사랑에서 음모론까지의 과정
사랑은 신비롭고 아름답지만 때로는 두렵고 불안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떠나지 않을까', '지금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와 같은 생각들이 자신을 끊임없이 뒤흔들기 때문입니다.
음모론은 진실을 찾기 위해 가정을 세우고, 그 가정에 근거하여 사실을 재구성합니다. 상대가 변심할 거란 두려움과 불안함에 빠진 사람들도 연인의 말과 행동의 진실을 찾기 위해 가정을 세우고, 그 가정에 근거하여 사실을 재구성하거나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연인의 갑작스러운 침묵은 단순 피로의 표현일 수 있으나, 사랑의 음모론은 상대의 침묵을 자신이 잘못으로 해석하고, 상대가 자신을 멀리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과도한 해석은 상대의 마음을 왜곡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음모론에 휘둘리는 이유는 단순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음모론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복잡한 사건의 원인을 비밀스럽고 절대적인 손길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자연재해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게 아니라, 신의 분노로 단순화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의 음모론도 다르지 않습니다. 복잡하고 오묘하게 다가오는 상대의 말과 행동을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단순화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런데 단순화라는 유혹에 넘어가버리는 순간, 음모론을 끊임없이 생산하여 진실과 상상의 경계가 흐려져 오해가 쌓여 관계의 질을 낮추게 됩니다.
이는 영화 <그녀, Her>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와의 관계를 완벽한 사랑으로 단순화합니다. 하지만 사만다가 다른 사용자들과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테오도르는 배신으로 단순화합니다. 이러한 지나친 단순화, 일반화는 상대를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오해를 키우고, 건강한 관계로 지속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사랑의 음모론에 쉽게 빠지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상대의 마음과 의도를 알아차리는 게 어렵다는 걸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오묘함, 불확실성을 인정하자
사랑의 음모론이 만들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감정의 복잡성을 부정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감정을 교류하는 것이므로 모호하고 복합적이어서 정의를 내리기 어렵습니다. 이는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단순화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사랑을 바라고 노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은 두 사람이 각자의 세계를 공유하지만 때로는 충돌하고 시간이 지나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 갈등을 견디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동화책으로 사랑을 선행학습한 게 가장 클 것입니다. 왕자와 공주님은 특별한 갈등 없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은 갈등이 없이 손발이 잘 맞는 관계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돌, 갈등이 있어야 사랑은 더욱 자연스럽게 무르익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사랑의 엄숙함, 숭고함, 낭만성과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오해와 갈등, 실수 등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로맨틱 코미디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로의 결점까지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사랑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사랑은 완전한 답을 만드는 게 아니라, 불완전함 속에서 답을 끊임없이 찾아나가는 여정에 가깝습니다. 만약 이를 부정하고 획일적인 답을 만들려 한다면, 어느새 사랑의 음모론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사랑은 끊임없는 상상력과 창의성의 산물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상대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 사람 안에서 새로운 면모를 들여다보며 흥미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음모론자들이 새로운 음모론을 발견할 때 느끼는 만족감과 비슷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연인의 미소나 사소한 행동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찾아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때로는 오해를 낳기도 하지만, 그 오해조차 사랑의 일부입니다. 그러므로 이 오해를 그대로 품은 상태로 상대를 오랫동안 바라보며 진실을 마주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깊어지게 될 것입니다.
음모론에서 벗어나려면 나를 사랑해야 한다.
사랑의 음모론이 생성되는 이유는 주로 상대방의 진심을 의심하거나, 내 감정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입니다. 이런 순간에 음모론에 휘둘리게 됩니다. 즉, 상대의 감정과 마음을 명확하게 알아차릴 수 없다는 불확실한 부분을 상상과 해석으로 채우려 하면, 사랑의 음모론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에서 중요한 것은 해석이 아니라, 그 해석을 뛰어넘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사랑의 본질이자, 음모론과 사랑을 구분 짓는 핵심입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랑은 진실과 직관 그리고 의심과 확신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하는 과정입니다. 누군가가 "나 얼마나 사랑해?" 같은 질문을 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여기서 상대의 마음을 확인했음에도 상대의 미소 한 번에 천국을 경험하고, 무심한 말 한마디에 지옥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음모론에 쉽게 휘둘릴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음모론에서 벗어나려면 내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오늘 꼭 이뤄야 할 작은 목표, 내 삶에 꼭 이뤄야 할 꿈으로 채워 넣는다면,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어 음모론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진실과 진심을 마주하기 위한 노력
우리는 사랑을 통해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상대를 이해하고, 서로 연결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음모론은 진실과 거리가 먼, 왜곡된 답을 내놓기 때문에 나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관계마저도 빈약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사랑은 나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길인 만큼 음모론에 휘둘리지 않길 바랍니다.
그럼 저는 짬뽕 먹으러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