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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처음 사랑

고마웠어. 이 나쁜 녀석아_.

by 글지은



영훈의 친구에게 잠깐 소식을 들었을 뿐 정작 당사자는 볼 수 없었다. 봄방학이 시작될 때까지 그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단풍길이 진짜 마지막이었나…. 혼자 허탈감만 왔을 뿐이다. 방학이 끝나면 곧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텐데 연락조차 주지 않는 그에게 야속한 마음만 들었다. 어떤 상태인지 가 볼 수도 없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시간만 흘러갔다. 정말 교복 위에 진회색의 외투를 입은 모습이 마지막이었나 보다. 우연히 마주쳤던 친구와의 소식 이후로 아무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어느새 봄방학도 끝나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2학년이 되어도 변함없이 교무부장실 정리 담당을 벗어나지 못했다. ‘벗어나지 않았다’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1학년 생활 동안 생각보다 꽤 즐겁게 했고, 선생님들도 인자하셨다. 개학하고 잠시나마 머릿속에서 영훈을 생각하지 않는 것에 도움을 주었다. 적어도 일지를 정리하고, 책상을 정리하고 선생님들과의 사이에서는 딴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더라. 그렇기에 그만둘 수 없었다. 천만다행인 건 교무부장실 선생님들이 반겨주신다는 것이었다. 학교에 가 있는 동안 교실 창밖으로 보이는 인문계 남자 고등학교 건물이 왜 그렇게 가깝게 보이는 걸까? 저 학교에 영훈은 이제 없다는 걸 내 머릿속은 까먹은 모양이다.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살아있기는 하나? 아픈 건 좀 나아졌을까? 아무런 연락과 소식도 오지 않았다. 그 사람과 나는 아직 이어져 있기는 한 걸까? 오만 가지 생각은 다 했다. 첫 친구를 떠나보낸 시간만큼 처음 사랑도 아프게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음을 받아들여간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나 내게는 이게 유행인가 보다 했다. 민경이와 지영은 2학년이 되어도 같은 반이 되었고 옆에 있어 주었다. 그것만으로 꽤 큰 힘이 되었다. 친구란 건 이래서 좋구나 싶었다. 영훈을 잊을 자신은 없지만 단 한 번의 소식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만 남았다.

2학년 생활에 익숙해지고 벚꽃이 떨어지고 푸른 이파리들이 피어가는 4월의 어느 날, 여전히 학교가 끝나면 당연한 것처럼 도서관을 집에 들어가듯 매일 다녀갔다. 영훈을 보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지만, 몸에 남아있는 습관은 열람실도, 푸르게 자라나는 느티나무 아래를 기억했다. 막차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아쉬움만 남긴 채 도서관을 나서는데 영훈의 친구를 보았다. “안녕하세요….” 어색하게 서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친구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내가 매일 봐오던 키 176cm에 안경을 쓰고, 손이 커다랗고 따뜻했던 그는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 편지가 그에게서 받은 마지막 사랑편지였다.

아프다는 말도 안 하고 끝까지 나한테 거짓말쟁이가 된 나쁜 녀석은 인사 한마디도 글씨로 남겼다. 아주 짧은 한마디. “같이 꾸는 꿈이 즐거운 꿈이라 다행이야!” 고작 그 한마디가 다더라.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다. 친구는 그의 마지막 모습도 보고 잘 보내줬다고 했다. 언제 그렇게 됐냐 물으니 봄방학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다 하더라. 혼자 외롭게 병실을 지킨 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드니 더 괘씸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바보처럼 좋아하며 웃는 내가 너무 철없다 생각하며 고소해했겠지. 단풍길이 정말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주소도 아는데 집으로 보내면 되지 굳이 친구에게 부탁은 왜 하나 싶고…. 눈물 콧물을 짜며 훌쩍대느라 집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놓쳤다. 계집애가 뭐 하느라 버스도 놓쳤냐고 엄청나게 혼났다.

나의 처음 사랑은 같이 책 읽기를 좋아하고, 공책에 끄적거리기도 좋아했고, 키다리 아저씨 같이 당연하듯 옆에 있었다. 철딱서니 없이 웃으며 아무것도 아는 것은 없으면서 먼저 유명해질 거라고 투덕거렸다. 꿈을 나누던 처음 사랑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도 있는 8개월도 채 안 되는 마음만 남겼다. 양심에는 찔렸는지 손에 힘도 없었을 텐데 한 줄이라도 남겨준 그의 손편지만 그리움으로 남겼다. 지금이라도 말해서 다행이구나 싶다. 내가 그에게 이제야 할 수 있는 마지막 말.

안녕, 나의 처음 사랑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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