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5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파충류와 멍부 이야기'  

고요한 그들이 알려 준 한 세상 잘 살아가는 비법들...

by 노익희 Jan 25. 2025

  

2007년 여름, 공주파충류체험관을 방문한 어린이들이 뱀을 다루는 체험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처음으로  만져보는 검은뱀에게  금방 친근감을 느끼면서 신기해 하고 있다. 2007년 여름, 공주파충류체험관을 방문한 어린이들이 뱀을 다루는 체험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처음으로  만져보는 검은뱀에게  금방 친근감을 느끼면서 신기해 하고 있다. 

푸른뱀의 해, 을사년(乙巳年)이 밝았다. 

파충류의 대명사인 뱀의 해가 돌아오니 지나온 긴 세월속에 파충류와 맺었던 삶의 궤적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 강물처럼 흘러 내린다. 운명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인간을 포함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을 운명이라고 정의해 보면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토록 다정하던 사람과 등을 돌리게 되고 맹약(盟約)을 한 사람과의 약속은 이내 깨어지기도 한다. 영원을 함께 하자던 사랑과의 이별 뒤에 사람들은 그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 들이고 그 아이러니를 수용하게 된다.    


젊은 시절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다가 심각한 후천적 장애를 얻고 안정적인 직장을 퇴직하게 되었다. 운명적으로 고향을 떠나게 되고 우연하게 파충류사업을 하게 되었었다. 어린 시절 뱀에게 물려 본 적과 군대에서 잡아본 적은 있지만, 키워본 적 없었던 뱀과 악어 등 파충류를 키우게 되고 아이들에게 체험학습을 시켜주면서 교육사업을 하였던 것이 운명으로 비유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까?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에 소재한 복룡초등학교가 폐교되고 공주파충류곤충관으로 바뀌었다.  체험관 입구의 예쁜 꽃들이 어린이들을 반겨 주는 듯 하다.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에 소재한 복룡초등학교가 폐교되고 공주파충류곤충관으로 바뀌었다.  체험관 입구의 예쁜 꽃들이 어린이들을 반겨 주는 듯 하다. 

급기야 가족을 멀리 두고 집을 떠나 대전과 충남공주에서 폐교된 초등학교를 임대해 두 곳에서 파충류박물관을 경영하게 되었었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운동장을 홀로 청소하거나, 그 큰 학교를 혼자 가꾸고 박물관으로의 모습을 만들어 가면서 느꼈던 큰 고독(孤獨)은 어떤 말로도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당시의 감회는 특별했었다. 지금은 죽어서 박제된 가비알이라 불리는 희귀 악어에게 이렇게 물어 보았었다. “가람아, 너는 내가 언제까지 가족과 떨어져 이 사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야심한 시간에 집과 가족이 그리워 혼자 악어나 큰 비단뱀과 이런 대화를 하고 접촉을 하였다면 이상한 사람이라 여겨지겠지만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대기업에 다니며 직장인으로 살던 나의 삶은 모두에게 어느 날 파충류를 키우는 사람으로 바꿔지게 되고, 특이한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어져 갔다. 사업으로 어느 정도 성공했던 친구가 어느 날 찾아와 사업을 만류하기도 하고, 가까운 사람들은 안타까워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경험을 만들어 주고 더 큰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는 희망은 그 길을 계속 걸어가게 했었다. 덕분에 알게 된 말이 없는 파충류들의 정직한 눈빛들과 예기치 않았던 감독관청들의 제재, 평범하지 않은 사업에서 일어나게 되던 크고 작은 사연들에서 인생의 깊은 맛을 배우게 되었다면 사족(蛇足)이 될까..    

  

브런치 글 이미지 3

2010년 여름 울산파충류곤충나라 작은 수영장에서 아이들에게 평생 잊지못할 추억을 전해 주고 있었다.


인연이 되어 지내던 지금은 퇴직하신 한 교장선생님은 멍게 이야기를 해 주었었다. “교육지도자는 네 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중에 멍게가 멍부보다는 낫다”고 농반(弄半)으로 나누던 이야기. 무슨 이야기인고 하면 멍청하면서 부지런 하면(멍부) 쓸데없는 문서를 많이 만들게 되고 불필요한 업무를 늘려 선생님들을 고단하게 하니 차라리 멍청한 관리자라면 게으른 게(멍게) 더 낫다는 이야기였다. 고마운 분이어서 더 기억나던 멍게 이야기는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운명적이지만 내가 하던 일이 ‘멍부’의 일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되는 대목이었다. 인생은 가치의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시대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어떤 길이 잘 사는 길인지 또는 허망한 삶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 저런 인생을 살면 참 행복하겠구나’ 라고 생각하던 어떤 이의 삶은 이내 가련함으로 다가오고 ‘저런 권력을 지니고 살면 부러울 게 없겠구나’ 라고 생각되던 이의 그것도 인생무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2013년 성남파충류갤러리에서 멋진 문양의 보아뱀과 점젆은 비단뱀과 함께


멍청한 머리를 가지고 부지런하게 살았던 젊은 시절..  부지런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열심히 일하지만 돌이켜보면 오히려 똑똑하게 생각하고 건강하게 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반성하게 된다. 어느덧 연금을 받는 나이가 되어 몇 달 전 생각보다 많은 연금을 받고 야릇한 행복감을 느꼈다. 이유 있게 흐르는 미소는 지나온 시절이 값진 추억으로 회상하게 된 때문이다. 지금도 멍게를 말하며 미소 지으시던 퇴직교장의 말씀이 귓전에 선하다. “똑똑하고 부지런하면 선생님들을 힘들게 하지만 많이 배울 수 있고, 멍청하고 부지런 하면 배가 완전히 산으로 가게 되는 거죠”     

   

공자는 '군자가 용맹만 있고 예가 없으면 세상이 어지럽고, 소인이 용맹만 있고 예가 없으면 도둑이 되느니라'라고 하였다.’ 중요한 자리에 소인이 군자의 자리를 꿰차고 앉아있다면, 멍부가 교육지도자의 자리에 있다면,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건강을 챙기지 않고 일만 열심히 한다면, 그 아쉬운 한계를 받아들이기에 긴긴 세월을 살아야 하는 우리의 삶이 너무 짧다는 사실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5

 중학교때 소헌 선생님께 배운 서예는 평생 독서와 글을 쓰고 자신을 돌아보는 기준이 되었다.   


어쩌다 후천적 중증 장애인이 되어 살아온 날들이 그리 슬프지 않은 것은 나를 지켜주는 어머니와 누나, 고마운 가족들과 소나무같은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늘 조용하지만 꼭 행동해야할 때에는 비범했던 파충류의 그 깨우침이 있었던 이유도 있었다. 뒤늦게라도 멍게가 멍부보다는 더 낫다는 인생선배의 조언을 실천하고 인문적으로 살아온 바로 그 연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일생을 춥게 살아 간다해도 고결(高潔)한 향기(香氣)를 팔지않는다는 매화처럼 그렇게 청유(淸遊)하게 살다가면 되는 삶이 아니겠는가..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