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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데, 관객은 없어요

모두 날 주목한다는 착각

by 소정


자기 현시욕

: 자신만을 내세우는, 자신만 특별히 주목받고자 하는 욕망

인간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정말 다양한 인간 공동체를 접한다. 동물의 무리생활에 비해 인간 공동체의 형태와 성격은 상당히 복잡하다. 성별과 연령 그리고 생활 방식과 같은 외적인 요소들은 물론, 관심사와 가치관 등 인간 내면의 요소들도 공동체 성격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결국 비슷한 요소를 지닌 인간들이 모여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공동체를 구성한 인간들은 어떠한 행동을 보이게 될까? 아마 타인들과의 친목을 도모하려 할 것이다.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말과 행동에 격식을 차릴 것이며, 어쩌면 실속 없는 이타심을 베풀 수도 있다. 그리고 결국 구성원들 중 인내를 가장 먼저 끝마친 한 명으로 인해, 이 욕망은 생각보다 빨리 모습을 드러낸다. 나만이 특별하고, 나만이 주목받고자 하는 욕망. 당신들과 내가 비록 한 공동체에 소속되었지만, 이곳의 주인공은 나이며 당신들은 그저 특별한 나의 관객일 뿐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01 타인으로부터 부여받는 특별함


인간은 스스로 의도를 하였든, 하지 않았든 간에 수많은 타인들의 평가를 접하며 살아간다. 안타깝게도 이 과정에 적응해 버린 인간은 타인들의 불필요한 평가에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며, 더 나아가서는 먼저 타인들에게 평가를 요구하는 적극적인 자세도 보여준다. 그렇게 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놀랍도록 단순하다. 본인에 대한 긍정적 평가들과 차별화된 인간성의 증명, 보통의 인간들보다 더욱 특별한 존재로서의 대접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평가들을 회상하였을 때, 과연 내가 원하는 평가들만 받을 수 있었던가? 평가는 평가자의 철저한 주관으로 편협하게 다듬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결국 편협하게 다듬어진 평가의 모양새란, 운 좋은 몇 명의 인간성을 과분하게 증명해 줄 수 있는 이타적인 면도 있다. 동시에 대부분의 인간을 필요 그 이상으로 좌절하도록 만드는 것도, 바로 그 편협한 평가 몇 마디인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정의하는 모든 것이 타인들의 주관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그 가치의 증명은 결국 진실한가? 타인의 평가를 훔쳐 포장한 자신의 가치를 자만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가져야 한다. 타인의 평가로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에 반드시 회의감을 느껴야 한다. 당신에게 편협한 평가를 내뱉은 그 타인도, 결국엔 남들과 다른 특별함에 목말라있는 보통의 인간들 중 한 명일 뿐이다. 그리고 그는 생각보다 자신을 제외한 보통의 인간에게 관심이 없다.



02 자신으로부터 부여받은 특별함


평소 혼자만의 생각을 즐겨하는 인간은 본인만의 지론을 한 개 이상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지론은 인간의 생각이 깊어지고 성숙해짐에 따라 이에 맞추어 적절히 변화한다. 한 번에 많은 것이 변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방대해지는 생각을 돌아보며, 스스로의 지론에 조금씩 살을 떼어내거나 덧붙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보통은 스스로 고찰하며 독서를 하거나, 타인과의 소통을 활용한다. 특히 타인과의 소통은 자신의 지론이 타인의 시선에서는 어떠한 형태로 관측되는지, 타인의 삶에서 어떠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본인은 이 과정이 마치 양자역학의 이중슬릿 실험(*양자역학의 대표적인 실험. 관측 행위가 입자의 행동을 바꾼다는 개념을 다룬다.)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실험의 내용 중, 전자는 실험자가 관측하면 입자가 되며, 관측하지 않으면 파동으로 행동한다는 것에 지론의 유동성이 떠오른다. '본인만의' 지론은 오로지 '본인이 영위하는 삶'에서만 '본인에 의하여' 지론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이다. 어떠한 경로로 타인의 삶에 개입된다면, 그것이 여전히 지론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선 더 이상 알 방법이 없다. 그토록 특별하고 소중했던 그 지론은, 이미 자신의 관측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지론은 어디서든 자신에게 관측될 것이라 굳게 믿는 인간들도 꽤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 높은 지론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스스로 생각해 낸 이 지론이 자신만의 것이며,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론을 갖기까지 굉장히 성숙하고 수고로운 일생을 살아왔다고 믿기에, 타인들의 지론을 평가하고 비판할 수 있다는 자격을 스스로 부여한다. 타인의 불편함도 고려하지 않고 본인의 지론을 몇 번씩 큰 소리로 언급한다. 마치 상대방을 본인보다 나약하고 깨달음을 얻지 못한 미성숙한 존재로 여기는 듯, 기분 나쁜 억양으로 말이다.



03 인간은 결국 주목받지 못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지위를 상승시키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다. 타인들과 다른 나만의 무언가에 집착하며, 가치 있는 인간이라는 타이틀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원초적인 관점에서는 결국 본인의 유전자를 우월하게 돋보이고 싶은 동물의 본능과 같다. 인간은 그렇다. 생태계가 그렇기에 그런 인간을 포용한다.

이 내용에서 전달하고 싶은 것은, 인간은 결국 주목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여긴다. 타인은 관객이다. 그리고 그 타인조차 관객을 자처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들은 독무대의 주인공이며, 그 공연의 관객석은 텅텅 비어 먼지만 흩날린다.


모임에 참석하면 이것이 또렷이 보인다. 어떤 이는 이야기나 풍부한 화젯거리로, 또 어떤 이는 기발한 의상으로, 어떤 이는 넓은 인맥으로, 또 다른 이는 자신의 고립으로 각자 자신만이 주목받길 꾀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계산은 착각이다. 자신만이 주목받을 주인공이요, 타인은 관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관객 없는 연극이 되어버리고 결국에는 그 누구도 주목받지 못한다. - '니체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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