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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성공에, 내 배가 아픈 건

아직 변하지 못한 내 모습 때문일까

by 소정


질투

: 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좋은 처지에 있는 것을 미워하고 깎아내리려 하는 것

살면서 친구나 동료의 성공에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질투가 났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겉으로는 축하를 해주면서도, 속에서 올라오는 질투에 자신에 대한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이 모순적인 감정은 우리가 꽤 자주 마주하게 되는 감정이다. 겉으로는 기뻐해야 마땅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나도 그 자리에 있고 싶은 욕망이 끓어오른다. 그 사람의 성공이 나에게는 가능할 것처럼 느껴지지만, 동시에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다. 특히 그 사람이 나와 비슷한 조건의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면, 그 질투는 더욱 강하게 밀려온다. 내가 그만큼 노력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나의 부족함을 일깨우는 것만 같다.




01 나도 가능하기에


우리는 종종 함께 무언가를 시작한 이들의 성공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는 한다. 축하를 하는 것이 맞지만, 마음속에서는 기쁨보다는 시기와 질투가 올라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나와 가까운 관계이며 동일한 조건과 배경을 가진 이들일수록 그 감정은 더욱 강하게 휘몰아친다. "저 사람도 힘들었겠지만, 나도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라는 생각이 들며, 내 노력이 부족했다는 사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들의 성취가 나의 부족함을 일깨우는 것이다. 부정당한 나의 가능성과 노력은, 결국 나 스스로에게 실망감을 안겨주며 자격지심과 질투로 변질된다.

반면, 나와 전혀 다른 환경을 가지고 일절 관련이 없는 이들의 성취는 어떤가. 생각보다 질투라는 감정이 잠잠하다. 그들은 나와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성취가 애초부터 나에게 가능성 없는 것으로 다가왔기 때문이 아닐까. 다른 세상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애초에 관심조차 없을 가능성이 크다. 내가 노력해도 그들의 성취는 절대 얻을 수 없을 거라는 단념이, 생각보다 나의 마음을 안온하게 만든다.

결국, 질투는 내게도 가능성이 있을 것 같은 성취에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내가 마땅히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은 성취를 이룬 상대방은, 내가 성취하지 못한 이유를 더욱 적나라하게 깨닫도록 한다.



02 자유를 누린다는 것


타인의 성취에 대한 질투, 그 근본적인 이유는 '자유'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과거 노예제도는 거의 모든 고대 문명에서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기원전 1000년경의 고조선 법조문에 노예에 대한 규정이 존재했다. 또한, 수메르 문명과 고대 이집트, 로마, 그리스, 이슬람, 아랍 제국 등에서도 노예제도가 있었다. 그 시기에 노예들은 과연 자신이 처한 불평등한 상황에 대해 한탄하고, 자신을 부리는 주인에게 질투를 느꼈을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선천적 노예제도를 인정했다. 당시 사람들 또한 '태어날 때부터 노예가 될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기에, 그 불평등한 운명은 거스를 수 없는 신의 뜻이다.'라고 자연스럽게 여겼다. 노예들의 불평등은 그러한 운명을 타고났기에 당연한 것이며, 노예들 뿐만이 아닌 다른 계층들 또한 사회라는 하나의 신체에서 각자 머리와 손, 발과 같은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는 것이라 믿었다. 이처럼, 불평등을 당하는 노예들조차 자신의 상황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이를 바꾸려는 생각을 가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근대 사회는 과거와 다르다. 우리는 이제 자신의 노력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자신이 노력하면 높은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살아가며,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기대'를 품게 된다. 결국 그것은 자신이 위대한 성취를 이룰 운명을 타고났다고 '착각'하게 만들고는 한다. 그런 기대와 착각을 부추기는 주범은, 주로 서점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바닥부터 시작한 대기업 CEO의 자서전', '한 순간에 부자가 되는 법' 등의 제목을 단 책들이 그 예시이다.



03 그저 우주 속 먼지


결국, 자유는 우리가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믿게 만든다. 이는 당연한 귄리이지만, 이 자유는 종종 인간 스스로의 욕망을 과도하게 키우기도 한다. 그렇기에 타인의 성공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을 느끼게 만든다. 특히 비슷한 조건을 가진 이들의 성공은 나의 부족함을 부각해, 내 삶이 기대에 미치치 못한다는 생각과 적은 노력에 대한 자책감을 안겨준다. 결국, 그들의 성취는 자기 실망과 질투로 이어진다.

진정한 가난은 단지 물질적으로 부족한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여기며 실망하는 것이다. 과도한 기대와 욕구는 자신을 괴롭게 만들고, 근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더욱 지치고 우울하게 만든다.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야 한다. 가능성 또한 과도하게 심어두지 말아야 한다. 유쾌한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별 거 아닌 존재라고 여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도 스스로의 성장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최소한의 욕구만을 가지려고 하고, 스스로에게 너무 높은 기대를 가지지 않도록 늘 다짐한다. 생각보다 쉬운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노력이 결국 나에게 주어진 최고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우리는 조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이다. - 알랭드 보통의 '불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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