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지금까지 눈 내린 풍경을 홀로 맞아보았던가?
따뜻한 남쪽 나라에 사는 이에겐 눈이 아주 특별하다. 특별하기에 늘 누군가와 함께 눈 내림의 설렘을 맛보러 내가 사는 일상에서 벗어나곤 했었다. 이번 명절은 눈 소식이 있다고 했다. 그것도 많은 눈이 예상된다며 명절을 보내러 출발하기도 전에 핸드폰에선 재난 문자가 미리 알려준다. ”눈길 운전 조심“ 시댁으로 출발하기 전 어머님께 온 영상통화에서도 온통 하얀 눈 세상이 보인다. ”더 조심히 올라갈게요. “ 명절을 보내러 가는 며느리 마음과 달리 마치 여행길에 오르는 것처럼 설렌다. 시부모님이 계신 팔공산에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걸 보러 가는 것도 결혼 13년 차, 명절 덕분에 처음 있는 일이다. 눈길 운전에 대한 걱정과 달리 올라가는 고속도로는 해가 쨍쨍이다. 내렸던 눈도 다 녹을 정도로 따스한 햇살이다. 그 따스함 속에 저 멀리 소복이 가득 쌓인 설산을 보며 설렌다. 곧 가까이에서 만나게 될 팔공산에 대한 기대감으로. 겨울 산을 혼자 오르고 있을 나를 상상하며.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날, 아침에 눈 뜨자마자 팔공산을 올랐다.
시부모님께 둘째를 부탁하고선, 또 이제 누나들과 잘 어울려 노는 둘째를 믿고.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운동화도 적당히 맞는 어머님 운동화를 신고선 지금 생각하면 겁도 없다 싶을 정도다. 아무 탈 없이 다녀와서 그렇지.
새하얀 풍경 속에 핀 눈꽃을 보며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뽀드득뽀드득 밟아가며 그렇게 홀로 올랐다. 눈을 밟는 소리가 좋다. 천천히 그렇게 한발 한발 발끝에 집중하며 오르다 보니 고요한 세상 속에 혼자 있는 내가 보인다.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고 싶을 때, 홀로 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수많은 생각들도 생각하기를 멈춘 듯, 그렇게 머릿속도 고요해진다. ’ 홀로‘라는 단어가 좋다. ’ 혼자서‘라는 말은 늘 다른 누군가의 대상에 빗대어 존재하는 말 같다. 그러나 ’ 홀로‘라는 말은 내면에서 피어나는 힘이 느껴진다. 마치 조금 더 내 안에 스스로 일어나는 힘에 기대어 나를 이끄는 그런 어떤 힘이.
눈이 가득 쌓인 산길, 오르는 길보다 내려오는 길이 더 어렵다.
두려움 없는 선택으로 아름다움을 좇아 오른 길,
온전히 집중한 내 발끝이 남긴 내 발자국.
이것으로 되었다.
힘든 길을 다녀온 뒤 더 채워진 힘으로 일상을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