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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않은 일과의 만남

「삶의 레시피」 쓸데없지만 쓸모 있는 - 06

by 율하



-처음 나간 모임에서 처음 본 사람과 내 음식을 나눔

-조카들에게 축하금 받기

-용기 내어 강아지 등을 쓸어봄

-아빠와 커플 신발 장만

-판타지, SF장르 소설 구입


이상은 작년 여름 복판, 일주일간 내게 일어났던 새로운 경험들이다. 적어도 내게는 제법 낯설고 신선한 일들이었다. 일상에서 내게 당연하지 않았던 일과 만나는 건 내가 미처 몰랐던 나를, 내가 미처 몰랐던 세상을 발견하는 일이다.

불현듯 일상을 비트는 이러한 작업이 시 쓰는 태도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길을 찾고 그 세계를 점점 더 확장해 A에서 A`로 나아가는.. 뭐, 이런 느낌적인.....






나이가 드는 것에 대한 일흔두 번째쯤의 정의를 내려보자면..

나이가 드는 건, 당연하지 않은 일들과
점점 거리를 두려 하는 것.
그럴수록 세상은 당연하지 않은 일들을
자꾸만 들이대는 것.


그래서 당연하지 않은 일들에 나를 방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세상이 불쑥불쑥 들이미는 당연하지 않은 일들에 조금은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테니..


나에게만 벌어지는 머피의 법칙

믿었던 사람이 주는 실망

어처구니없는 현실들

미래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한계

..

..


사실

당연하지 않은 일들은, 뒤집어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세상에 완전한 건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어떤 경우든 한 면만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러니 '나에게 당연하지 않은 일'들도 '당연한 가능성'을 가질 수 있음을 담백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당연한 가능성'을 긍정적인 면에서 추출하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작나무숲>, 김재현, 2024.





난 저기 숲이 돼볼게

너는 자그맣기만 한 언덕 위를

오르며 날 바라볼래

나의 작은 마음 한구석이어도 돼

길을 터 보일게 나를 베어도 돼

날 지나치치 마 날 보아줘

나는 널 들을게

이젠 말해도 돼 날 보며

아 숲이 아닌 바다이던가

옆엔 높은 나무가 있길래

하나라도 분명히 하고파

난 이제 물에 가라앉으려나


(원곡 : 최유리)






좋아하는 곡의 가사다.

이 곡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을 본 적이 있는데,

내가 느끼는 바는 당연하게 생각한 것에 대한 당연하지 않음의 이야기이다.

30대의 내가 20대의 나에게

꿈 밖의 내가 꿈속의 나에게

육체의 내가 마음의 나에게 털어놓는 이야기 같다.

옆에 있는 높은 나무들처럼 나 역시 당연히 키 큰 나무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음을 자각하는 존재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렇지만 그 목소리는 결코 초라하지 않다. 결코 슬프지 않다.

여전히 숲이 되어가는 중이니까.



H-er.

*커버 이미지 - '차오르는 빛',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 展, 마이아트뮤지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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