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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나의 알프레도

「삶의 레시피」 쓸데없지만 쓸모 있는 - 07

by 율하



2024년 가을,
충무로 대한극장이 66년 만에 문을 닫는다는 뉴스를 접했다.


KakaoTalk_20250530_002626923_05.jpg 2024. 09. 18 중앙일보. "한국영화 충무로 시대 끝" 66년 역사 '벤허 극장' 문 닫는다



국내 최초로 70mm 초대형 스크린을 선보였을 때도,

2011년에 멀티플렉스로 대대적인 변화를 꾀했을 때도, 대한극장은 시설이 좋은 영화관으로 나름 유명했다.


하지만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이 시장을 완전히 주도하고 있는 현재,

단관 시절 극장으로 서울 시내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던 대한극장이 영원히 막을 내렸다.


당시 근처에 갈 기회가 있어 극장의 마지막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폐관한 모습의 극장을 직접 보자니 왠지 아쉬움이 더 크게 와닿았다.




대한극장의 마지막은 '한국 영화의 메카'로 불렸던 충무로의 시대가 완전히 저물었다는 상징성까지 갖는다.

이제 더는 영화와 충무로를 연결 지을 만한 일이 없지 않을까..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영화 <시네마 천국>은 과거 영화에 대한 헌사라 할 수 있다.

2차 대전 후, 시칠리아 한 마을의 '시네마 파라디소'라는 극장을 배경으로 영사기사인 알프레도와 영화를 좋아하는 소년 토토의 우정이 주된 스토리라인이다.


나에게 있어 '시네마 파라디소'라 불릴 어린 시절의 극장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공교롭게도 영화 <시네마 천국>의 주인공 토토가 영화산업의 전환기 (필름 형태, 상영방식)를 겪었던 것처럼, 오늘의 우리 역시 영화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OTT)를 맞고 있다.






세상은 점점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간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다.

문방구, 레코드샵, 액세서리 샵, 향수 가게, 화장품 가게, 옷 가게, 이발소, 세탁소, 전파상, 철물점, 그릇집, 방앗간, 건어물 가게, 국숫집, 한복집, 금은방, 목욕탕.. 등등 그 많던 가게들은 어디로 갔을까?


자잘한 생필품이 필요할 땐 다 있다는 천 원 샵을 찾는다.

쓸만한 문구류를 보려면 대형문고에 딸린 문구코너로 간다.

향수를 사려면 백화점 1층으로 향한다.

샤워기 헤드를 바꾸려면 대형마트로 가면 된다.

화장품은 뷰티 스토어에 다 모여 있다.

아이디어 상품이 필요할 땐 다 있다는 천 원 샵을 찾는다.

음원 세상에서 음반을 구입할 일이 드물어졌지만, 그래도 음반을 보려면 대형문고에 딸린 음반코너로 간다.

모처럼 옷을 직접 사려면 백화점 2~3층으로 향한다.

멀티탭을 바꾸려면 대형마트로 가면 된다.

웬만한 헤어제품은 뷰티 스토어에 다 모여 있다.

......

......


편리한 세상이다.

깔끔한 세상이다.

쉬운 세상이다.

건조한 세상이다.

재미없는 세상이다.

이상한 세상이다.


동네에 있던 그 많은 가게들은 어디로 갔을까?

가게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다 어디로 가셨을까?

이제 우리 주변엔 개성도, 매력도, 인심도, 주인아저씨/아주머니도 없는 공룡 같은 커다란 공간만 있을 뿐이다.






길을 걷다가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들을 보노라면 괜스레 반갑다.

그래서 나는 가게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이제 더는 사라지지 말아 주길......



2024후암동 이용원.jpg
2025수유동 조명가게.jpg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런 가게들을 내 방식으로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H-er.



*커버 이미지 - <시네마 천국>, 쥬세페 토르나토 감독, 이탈리아,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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