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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에 대한 생각

「삶의 레시피」 쓸데없지만 쓸모 있는 - 05

by 율하



자신의 슬픈 역사를

자신의 아픈 기억을

자신의 외로웠던 순간을

자신의 씁쓸한 가족 이야기를 대화 사이에 툭, 내어 놓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뮤지컬 배우가 대사를 읊조리다가 자연스럽게 노래로 연결시키듯이.....

상처의 시간을 덤덤히 내보일 수 있을 만큼, 그들은 단단하다. 그만큼 자유롭다. 그래서 아름답다.

아무도 모르게 홀로 견뎠을 인내와 고통과 번민의 시간을 건너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면류관이 아닐까.


'킨츠기(Kintsugi)'라는 공예가 있다.

'금으로 이어 붙이다'라는 뜻을 가진 말로, 일본에서 유래한 도자기 수리기법이다. 깨진 도자기 조각을 밀가루 풀이나 옻칠로 이어 붙인 뒤 깨진 선 위에 금, 은, 구리 가루를 써서 깨어진 부분을 강조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이 작업을 통해 깨진 그릇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으로 재탄생된다.

이렇게 상흔을 기꺼이 드러낼 때, 그건 더 이상 약점이 아닌 자신만의 아이덴티티가 된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 박 준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진정한 '삶의 영웅'

'슈퍼맨'처럼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도, '아이언맨'처럼 떠벌리지도 않는다.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그들이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건, 초인적인 능력이 있어서도 화려한 배경이 뒷받침되어서도 아니다.

온갖 고통과 시련을 묵묵히 감내하면서 발효의 시간을 거쳐 그 자리를 지키고 섰기 때문이다.

평상심(平常心)을 유지한다는 건 엄청난 내공이다.

그들의 슬픔은, 그들의 약점은 그 자체로 자랑이고 힘이다.




브런치를 통해 삶의 영웅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들의 다양한 서사를 만날 수 있어서, 그들의 삶에 작은 응원을 보탤 수 있어서

짬짬이 맞이하는 여행 같은 이 시간이 즐겁다.

시작한 지 한 달 남짓, 이제 서서히 낯익은 이름들이 쌓여간다.






<꿰맨 항아리>, 목인박물관 목석원.


재미있게도 킨츠기와 비슷한 기법을 우리에게서도 볼 수 있다.


몇 해전 목인박물관 목석원에 갔다가

눈길을 끈 항아리가 있어 사진을 찍어두었는데,

킨츠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생각이 났다.


'꿰매다'라는 동사가 항아리와 만나니 익숙한 낯섦을 선사한다.

킨츠기와는 또 다른, 생활 예술의 좋은 표본이 되는 것 같다.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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