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G)가 결여된 혁명들(7/7)

정리 및 기타 혁명들

by 감각의 풍경

2.7 마무리 – 구조 없이는 혁명도 없다

© 휘각(揮珏).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이 장에서 우리는 아래 참고까지 포함하면

총 열 개의 구조가 없는 혁명 사례를 살펴보았다.


모두 감정은 넘쳤고, 때로는 윤리적 명분도 강했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고, 권위는 흔들렸다.


그러나 그들은 구조를 세우지 못했고, 혁명은 실패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구조 자체가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본 진실은 다르다.

혁명 세력은 구조를 세우려 했다.
그러나 그 구조는 무너지도록 방해받았다.


미얀마에서

시민들은 헌정 회복과 문민정부 복원을 요구했다.


이란의 젊은이들은

개혁을 외쳤고, 헌법적 권리를 되찾고자 했다.


홍콩의 학생들은 보통선거를 제도화하려 했고,

동학군은 지방 자치와 새로운 사회 질서를 꿈꿨다.


그러나 그 모든 시도는 하나같이

정치적 폭력과 감시, 외세 개입과 내부 분열 전략에 의해 꺾였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권력은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가능한지를 설계하는 능력 그 자체를 통제한다고 말했다.


혁명을 무너뜨리는 자는 혁명가의 입을 막는 자가 아니라, 혁명가의 설계도를 찢고, 항아리를 깨는 자다.

© 휘각(揮珏).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권력은 담론을 봉쇄하지 않고도,

담론이 제도로 번역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순자에 따르면, 예는 감정을 질서로 바꾸는 틀이다.

혁명은 감정으로 시작되지만,

그 감정을 예로 바꾸지 못하면 오래가지 못한다.

혁명을 막는 자들은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예를 가로막는다.


다시 말해,

혁명을 실패하게 만든 것은 혁명가의 무능이 아니라,

구조가 형성되기 전에 그 싹을 자른
통치의 전략이었다.


따라서 이 장의 결론은 이렇게 바뀐다:

“구조 없는 혁명은 실패한다”는 명제는 맞지만,

그 구조는 종종 없었던 것이 아니라,
무너뜨려진 것이다.


혁명의 실패는 감정의 과잉이 아니라,

구조화의 실패이며, 그 실패는 고의로 유도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권력의 기술이
혁명의 기술을 앞질렀을 때
발생하는 패턴이다.


지난 화에서 비유한 로타 칼파냐 비유로 다시 돌아가면, 고삐(G)가 풀린 마차는

결코 주인(국민)을 바른 길로 이끌 수 없다.


그래서 혁명 저지세력은 항상 혁명세력이 고삐를 잡을 수 없도록 하는 권력의 기술을 사용한다.

© 휘각(揮珏).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원인이야 어떻게 되었건, 결론적으로

구조가 없는 혁명은
단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것은 여러 사례들을 통해서 역사적으로 확인한

단 하나의 예외도 없는 귀납적인 결론이며,


경험의 명제이자,

철학의 명제이며,

이후 장들에서 반복해서 확인될 정치적 명제다.


이제 우리는 두 번째 축,

감정(E)의 결여로 눈을 돌릴 것이다.


감정이 결여되었거나 폭주했을 때,

혁명은 또 어떻게 실패했는가?


다음 장에서 우리는 그 질문을 따라간다.

© 휘각(揮珏).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2.7 참고 – 설계되지 못한 반란들


이 장의 앞 절에서는 구조(G)가 결여된 혁명의 대표 사례 다섯 가지를 심층적으로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는 남아 있는 여섯 개의 G 결여 사례를 압축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이들 사례는 공통적으로 구조적 상상력과 제도 설계 능력의 부재 속에서 감정만으로 출발한 혁명들이며, 모두 실패로 귀결되었다.

© 휘각(揮珏).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2.6.1 진승·오광의 난 (기원전 209, 중국)


중국 역사상 최초의 민중 봉기로 평가받는 진승·오광의 난은, 진나라 말기 가혹한 법과 강제 동원에 저항하여 일어났다. 감정은 분명했고, 시대는 혼란했으나, 봉기를 뒷받침할 제도 설계는 전무했다. 반란은 단 1년 만에 진압되었고, 그들이 꿈꿨던 세계는 구축되지 못했다.



2.6.2 황건적의 난 (184, 중국)


후한 말기, 도교적 종교 신념을 바탕으로 조직된 황건적은 ‘천하대세는 다시 개벽해야 한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봉기했다. 그러나 이들은 구조적 개혁안을 제시하지 못했고, 민중의 광범위한 참여에도 불구하고 결국 군벌에 의해 제압되었다. 감정과 종교는 있었지만, 그것을 지속시킬 틀은 없었다.



2.6.3 이자성의 난 (1644, 중국)


명나라 말기 조세와 착취에 시달리던 농민층의 반란으로, 이자성은 일시적으로 북경을 점령하고 정권을 수립했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국가 구조를 만들지 못했고, 바로 청군의 반격에 무너졌다. 정권은 무너뜨렸으나, 대안을 설계하지 못한 전형적 구조 결여 사례다.



2.6.4 시리아 혁명 (2011–현재)


아랍의 봄의 연장선상에서 시작된 시리아 시민 혁명은,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억압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분노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시위는 곧 무장 내전으로 비화했고, 각기 다른 이념을 가진 반군 집단들이 난립하면서 공통의 구조 설계 없이 전쟁만 지속되었다.

2025년 기준, 이 내전은 14년째 이어지고 있다.



2.6.5 이집트 혁명 (2011)


무바라크 정권을 무너뜨린 이집트 혁명은 단기간에 정권을 전복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이후 등장한 무슬림 형제단 정부는 제도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다시 군부 쿠데타로 전환되었다. 헌정 설계 없이 감정의 분출만 있었던 이 혁명은, 구조 없는 감정이 어떻게 반동을 낳는지를 보여준다.

© 휘각(揮珏).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이 모든 사례는 하나의 공통된 질문으로 수렴된다:


“무엇을 무너뜨릴 것인가”는 분명했지만,

“그 다음 무엇을 세울 것인가”는 준비되지 않았다.

혁명은 파괴가 아니라 재구성이다.


구조 없는 혁명은,

설계되지 못한 분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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