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G)가 결여된 혁명들(6/7)

안록산의 난

by 감각의 풍경

2.5 안록산의 난 – 군사력으로만 뒤엎다

안록산과 안록산의 난 지도, 출처: wikimedia

755년, 당나라 중기.

절도사 안록산은 당시 환관과 외척의 국정 농단, 민심 이반, 중앙정부의 무능을 틈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다.


그는 20만 대군을 이끌고 낙양과 장안을 점령하고, 스스로 대연(大燕)이라는 황조를 세웠다.


이는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군사력 기반의 정변'이었고, 후대의 수많은 군벌 반란의 원형이 되었다.


* 안록산(安祿山)의 이름이 알렉산더(Alexander)의 음차라는 주장

이 주장은, 그의 이름 ‘록산(祿山)’이 이란어 ‘로우샨(rowshan, 빛나다)’에서 유래한 것과 함께 일부에서 ‘알렉산더’의 음을 중국어로 옮긴 것이라는 해석에서 비롯되었다.

즉, ‘록산’이 알렉산더의 ‘산더’ 부분과 음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연관 지은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음운학적·역사적 근거가 약한 민간어원론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록산’은 소그드어 ‘rwxšn’에서 온 이름으로 ‘빛’이나 ‘광명’을 뜻하며,
안록산은 소그드인 아버지와 돌궐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민족 혼혈이었다.

그의 원래 이름 ‘알락산(軋犖山)’은
돌궐어 ‘Alaγ’(전쟁 신)와 소그드어 접미사 ‘šan’의 합성어로, 알렉산더와는 별개로 중앙아시아 문화권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따라서 안록산 이름이 알렉산더의 음차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며,
학계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이름은 소그드와 돌궐어가 융합된 다문화적 배경을 반영하는 것으로,
당대 중국 내 소그드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본다

그러나 그 반란은 시작만 화려했을 뿐, 구조적 기반이 전혀 없었다. 알록산은 새로운 제도나 헌정 체제를 설계하지 않았고, 피지배 집단과의 윤리적 합의도 없었다.

감정은 없었고, 존재의 전환도 없었다.

남은 건 오직 무력뿐이었다. 그는 곧 암살되었고,

이후에도 반란은 8년간 이어졌으나 결국 진압되었다.

알록산은 제국을 전복했으나,
세계를 설계하지는 못했다.


2.5.1 푸코, 순자

© 휘각(揮珏).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고대 권력의 전형은

물리적 공개 처형과 강압을 통한 위계 구조 유지라고 설명한다. 안록산의 난은 정확히 이 구조를 따른다.


그는 법과 제도를 통한 설득이 아닌,

살육과 장악을 통한 순종을 강요했다.


그러나 푸코가 말했듯이,

그런 권력은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그것은

감시를 낳을 수는 있지만,
공감을 낳지 못하기 때문이다.

순자의 예치론도 이 실패를 보완적으로 설명한다.

순자에게 예(禮)는 단지 외형이 아니라

감정을 조율하고, 권력을 제도화하는 기술이다.


안록산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그는 이기적 충동에만 충실했고,

어떤 사회적 질서도 구성하지 않았다.

감정도 윤리도 없는 권력은
폭력일 뿐이다.


2.5.2 자멸한 혁명

© 휘각(揮珏).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안록산의 난은 자멸한 혁명이다.

© 휘각(揮珏).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이 난이 당나라에 끼친 피해는 어마어마했다.

인구의 3분의 1이 줄어들었고,

경제는 마비되었으며,

이후 당은 결코 회복되지 못했다.


안록산의 난은 혁명이 아니라,

구조 없는 전복이 낳은
국가의 붕괴였다.

군사력은 혁명의 수단일 수는 있어도,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어떤 혁명이든,

설계 없는 반란은 성공할 수 없다.


이것이 구조(G)가 부재한 다섯 번째 실패의 전형이다.



2.6 구조 붕괴를 위한 혁명 탄압의 패턴

© 휘각(揮珏).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혁명 저지 세력도 알고 있다.

구조(G)를 붕괴시키면

혁명세력은 결코 정권교체에 성공할 수 없음을.


그래서 아래와 같은

공통적인 패턴으로 혁명 세력의 구조를 붕괴시킨다.

© 휘각(揮珏).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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