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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만 버그가 났다.

by 박요한 Feb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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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인생만 버그가 났다

나는 오래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책상은 커피 얼룩과 피곤이 흘린 자국들로 뒤덮여 있었다. 모니터에서 희미하게 깜빡이는 커서가 마치 무언가를 예고하는 것 같았다. 나는 키보드를 두드렸다. 엔터를 눌렀다.

에러.

다시 코드를 살펴봤다. 논리적으로 완벽했다. 아무 문제도 없어야 했다. 하지만 또다시 에러가 떴다.

“예상치 못한 오류 발생.”

나는 순간적으로 스크린을 노려봤다. 마치 내 코드가 내게 말을 걸고 있는 듯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버그야.”

그 말을 중얼거리자마자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스쳤다. AI가 지배하는 시대였다. 모든 코드가 완벽해지고, 인간 프로그래머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세상. 하지만 단 하나, 내 코드만은 버그를 일으켰다.

나는 그게 나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내 가능성이었다.

버그는 내 인생을 망칠 줄 알았다. 하지만 반대였다.

내가 개발한 AI 자율주행 시스템이 버그를 일으켜 차들이 도로 한복판에서 갑자기 멈춰 섰다. 원래라면 회사가 날 해고해야 했다. 그런데 상황이 달랐다.

SNS에는 ‘명상하는 AI 자동차’라는 해시태그가 붙었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 차를 타기 시작했다.

“AI도 때때로 멈출 필요가 있다.”

“우리는 너무 빨리 달려왔는지도 모른다.”

철학적인 해석이 난무했다. 명상 효과가 있다고 평가받은 내 버그 덕분에, 자율주행 시스템의 주가는 폭등했다.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만났다.

그날도 나는 카페에서 노트북을 펴고 있었다. 스크린에는 온갖 빨간 오류 메시지들이 떴다.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가 내 화면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일부러 이렇게 만든 거예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거… 너무 인간적이잖아요. 완벽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불완전한 것 같아요.”

그녀는 내게 연락처를 남겼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버그 덕분에 연애가 시작됐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버그를 조종하는 게 아니었다. 버그가 나를 조종하고 있었다.

내가 만든 AI 금융 시스템은 뜻밖의 버그로 인해 위험한 주식은 절대 매수하지 않는 구조가 되었다.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이건 혁명이다. 이 AI는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코드를 썼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 버그는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

정부 기관에서 날 찾아왔다.

“혹시… 의도적으로 이런 버그를 만든 겁니까?”

나는 웃었다.

“아니요. 저는 그저… 인간일 뿐입니다.”

그들은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더니,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혹시, 신 아닙니까?”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날 밤,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켰다.

AI 디버거가 메시지를 띄웠다.

[경고: 예상치 못한 오류 발생]

[이 버그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버그의 원인: 인간]

나는 노트북을 덮었다.

밖에서는 내 버그 덕분에 AI 택시들이 도로 위에서 천천히 돌고 있었다. 사람들은 신기한 듯 영상을 찍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이 시대에 유일한 인간적인 프로그래머, 신의 버그를 만드는 남자!”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위스키를 한잔 따랐다.

그리고 다짐했다.

내일도 열심히 버그를 만들겠다고.

버그의 신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내 버그가 처음으로 문제를 일으켰다.

내 코드로 작동하던 AI 교통 시스템이 도로 위의 모든 신호등을 동시에 녹색으로 바꿔버렸다. 시내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이건 우연이 아니야.”

경찰이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 언론은 날 ‘테러리스트’라고 불렀다.

그동안의 행운이 한순간에 뒤집혔다.

나는 도망쳤다.

내 코드가 나를 배신한 걸까? 아니면, 내가 처음부터 착각하고 있었던 걸까?

나는 지하철 역 한구석에 앉아 있었다. 땀에 젖은 손으로 노트북을 열었다.

[경고: 예상치 못한 오류 발생]

[이 버그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버그의 원인: 인간]

숨을 삼켰다. 노트북 화면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코드를 다시 열어봤다.

거기엔 내가 짜지 않은 코드가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이건 내가 만든 버그가 아니었다.

이건, 버그가 나를 만든 것이었다.

나는 모든 걸 버리고 도망쳤다.

밤기차를 타고 도시를 떠났다. 깊은 산속, 오래된 마을에 도착했다. 신호도 잡히지 않는 곳. AI가 존재하지 않는 곳. 나는 그곳에서 살아야 했다.

그런데, 마을에는 오래된 기계가 하나 있었다.

낡은 로봇이었다.

사람들은 “이건 우리 마을의 수호자야”라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여기 있었고, 마을을 지켜주었다고 했다.

나는 로봇을 살펴봤다.

그리고 경악했다.

그 안에는 내 코드가 있었다.

오래된, 아주 오래된 버전.

내가 AI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실험 삼아 짜봤던, 단순한 코드.

그때 깨달았다.

“나는 원래부터 버그였구나.”

버그는 우연히 생긴 게 아니었다. AI가 완벽해지기 전에, 나는 이미 버그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낡은 로봇을 수리했다.

버그가 가득한, 어설픈 로봇.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좋아했다.

“너는,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다.”

나는 거기서 살기로 했다.

완벽한 AI가 없는 곳에서.

버그가 인정받는 곳에서.

도시에서는 날 범죄자로 여길 것이다. 하지만 여기선, 나는 그냥 인간이었다.

비가 내렸다.

나는 로봇과 함께, 천천히 마을 길을 걸었다.

바람이 불었다.

멀리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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