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화된 보상의 근거가 된다면 충분하다.
공정한 평가라는 것이 가능할까? HRM의 영역에서 일을 하다보니 참 많은 구성원들이 생각보다 평가에 민감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가 시즌인 연말 뿐 아니라 연중 중요한 화두인 것 같다. 특히 새롭고 어려운 일을 하게 될 경우 많은 구성원들은 "이거하면 좋은 평가 받나요?"라는 말을 한다. 혹은 자신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이유를 "어차피 이렇게 열심히 해봐야 좋은 평가 못 받던데요?"라고 항변하기도 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회사원인 우리는 어떤 행동의 근거로 평가를 꽤나 중시한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보통 평가는 1년 단위로 진행된다. 조직평가를 강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 직급이나 연차, 직책에 따라 비교 그룹을 다르게 설정하는 경우도 있고 동료 평가를 반영하기도 하고 뭐 복잡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올해 당신은 (직급/업무 난이도/조직평가/태도 등등을 다 고려하여) OO입니다."로 판단 받는다. 일종의 성적표이다. 예전 언젠가 한 선배와 평가에 대해서 길게 논의한 적이 있었는데, 그 대화의 결론은 "공정한 평가 = 내가 잘 받은 평가"였다. 놀랍게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에 꽤나 동의가 되었다.
지금까지 3군데의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각각 평가의 디데일이 달랐다. 첫 회사는 조직평가는 절대평가로, 개인 평가는 상대평가로 진행했다. 우리 부문이 B를 받으면 부분 내 5개 팀이 A/B/B/B/C 를 받고, 팀이 B를 받으면 팀원들의 고과 평균이 B가 되는 구조였다. 한 팀에 다양한 직급이 섞여 있었지만 이 부분이 고려되지 못한 상대평가였다는 점과 승진 점수가 필요한 선배에게 고과를 만들어주다보니 상대적으로 승진 대상자가 아니었던 사원이었던 나는 보통의 고과를 받았다는 점에서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조직의 평가가 구성원의 평가까지 이어지는 건 나름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회사는 뭐랄까.. 그 해에 어떤 일을 담당하게 되느냐가 평가의 많은 부분을 좌지우지하는 느낌을 받았다. 큰 변화가 없던 회사인만큼 조직 관점에서 중요한 소수 업무들이 정해져 있었고 그 일을 담당하게 되면 어느 정도 좋은 평가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몸이 고생스럽고 번잡한 업무가 많아도 조직(회사) 차원에서 중요도가 낮은 업무에 배정되면 좋은 고과를 받기는 어려운 구조였다.(물론 그 와중에도 진짜 잘하면 티가 나지만 나는 그 정도로 진짜 잘하는 사람은 아니...) 다행스럽게도 조직 내에서 이에 대한 공감대가 어느 정도 있었고 주기적인 업무 순환이 되었기에 크게 불공정하다는 느낌은 없었다.(사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 자체가 아니었던 뭐 그런 탓도 있다)
절대 평가를 지향하는 세 번째 회사는 현직인 관계로 상세히 적을 수 없다. 다른 사례들은 좀 들어봤다. 과감하게 절대평가를 하는 플랫폼 기업이 있다. 그 회사는 90% 정도의 구성원이 같은 등급으로 고과 평가를 받는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극 소수의 에이스(상황에 따라 있을 수도 없을수도 있다고 함)이 높은 등급을, 5% 정도의 저성과자(한계성과자?)가 낮은 등급을 받는다. 이 경우 극 소수의 에이스들은 회사의 인정과 함께 차별화된 보상을 받게 되고, 저성과자들은 아쉽지만 다른 회사를 찾아보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옳은 일인지는 알 수 없다. 공정하다고도 하긴 어렵다. 하지만 한 회사 안에서 통용되는 규칙이라면 나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IT 대기업은 모든 구성원이 동일한 시험을 치뤄서 그 결과를 평가에 반영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직급과 관계없이 순수하게 실력을 보겠다는 의지의 반로였다. 그랬더니 주니어들은 일하는데 시니어들은 일 시켜놓고 시험 공부를 해서 그들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불만이 컸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해당 회사의 평가 제도가 이후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면 가장 공정해보이는 시험이라는 수단이 어떻게 더욱 불공정을 가속화시키는지 보여준 의미있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나의 짧은 경험과 몇 가지 주워들은 풍월로만 생각해봤을 때, 공정한 평가는 없다. 앞서 언급했던 선배의 "공정한 평가 = 내가 좋은 등급을 받은 평가"가 말 그대로 촌철살인이다.
그래서 연말 연초에 인사 담당자는 평가/보상의 공정성에 대한 수 많은 불만과 직면한다. 내가 일을 더 많이 했다. 내가 한 일이 더 중요하다. 결과가 나빴던 것은 시장과 전략의 탓이지 나는 시키는 일을 다 했다. 등등 ..이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불만은 대부분 평가 그 자체인것 처럼 보인다. 평가 절차의 합리성과 평가 결과의 공정성 혹은 객관성을 문제삼는다. 불만을 표시하는 형태는 개인의 상황마다 다르다. 한 때 유행이었던 "조용한 퇴사" 모드로 전환하기도 하고, 이의 제기를 통해 등급을 변경하기도 하고, 가장 적극적인 경우에는 퇴사(이직)를 선택한다.
그런데 이런 면담을 하다보면 묘하게 대화가 겉돈다는 느낌을 받는다. 분명이 내가 한 일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들이 불만을 가지는 핵심은 보상이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회사 안에서 돈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기에는 서로 불편하니 평가 등급을 가지고 말을 길게하는 것 같다. 그리고 보상을 올려받아야겠다는 심리는 묘하게도 이익의 증대가 아닌 손해의 보전에 가까운 대화가 된다. 그래서 보상의 협상이 잘 안되면 다음번에는 더 높은 성과를 내서 높은 보상을 받아야지가 아닌, 이럴꺼면 앞으로 어려운일은 안 할래가 되어버립니다.
회사 관점에서 상대 평가를 더 선호하는 이유는 보상의 배분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 같다. 보상은 알다시피 금전적 보상과 비금전적 보상 두 가지가 있다. 절대평가가 될수록 보상의 차등이 어렵기 때문이다. 100명의 직원에게 1억의 인센티브를 나누어줄 수 있다고 했을 때, 절대 평가를 한다면 200만원 3명, 100만원 94명, 0월 3명 이런식으로 나누어줘야 한다. 상대 평가를 하면 재원 분배의 유연함이 생긴다. 연봉의 인상도 마찬가지이다. 상대평가와 보상이 강결합된 조직에서는 입사동기라고 해도 몇 해만 지나면 2배 이상 실수령액이 달라진다.(회사가 생각하는 인적 자원의 가치가 두 배 정도 벌어지는 것이다)
비금전적인 보상은 진급, 교육, 직책 보임 등에 활용된다. 아무래도 잘 하는 사람에게 더 중요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회사에서 보내주는 다양한 학위과정, 해외 세미나 등등) 직책도 맡기고 승진도 빠르게 시킨다. 이러한 차별화된 보상(어찌보면 회사 입장에서는 투자)을 제공하기 위해서도 누가 더 나은 자원인지를 가릴 수 있는 누적된 상대 평가 자료가 필요하다.
사실 많은 경우 평가/보상에 대한 문제는 상대이든 절대이든 평가 결과와 보상간의 연관 관계가 쉽게 설명되지 않을 때 발생한다. 평가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같은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다르고, 평가 시점의 회사의 기조에 따라 등급의 배분율이 너무 크게 차이나고, 등급의 차이가 금전/비금전적인 보상의 차이로 설명되지 않을 때 평가 체계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의미가 없어지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 평가 체계로 인해 업무/조직 몰입도가 낮아지기도 한다. 구성원이 적당한 긴장 속에서 몰입해서 일하려고 만든 평가/보상 체계인데 이로 인해 역효과가 발생한다면, 없는 것보다 못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이직이 잦은 업계에서 이전 회사에서의 평가 그레이드 그 자체는 점차 의미가 퇴색된다. 하지만 그 평가와 연동된 보상(연봉)은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래서 평가와 보상이 강결합된 회사일수록 좋은 직원이 입사할 확률도, 좋은 직원이 남아있을 확률도 높아진다. 회사 관점에서 잘하는 평가는 함께 오래 갈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면밀하게 구분하는 행위가 꾸준히 지속되는 것이다. 함께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좋은 고과와 그에 상응하는 보상(금전/비금전)을 주고,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확실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잘하는 평가라고 생각한다.
개인 관점에서 공정한 평가는 없다. 회사 차원에서의 공정한 평가도 없다. 공정이라는 키워드에 매몰되면 평가라는 행위의 기본을 잊게 된다. 평가는 보상을 위한 기준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