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버린 이름 3. 무명(無名).
오늘도 그는 온 기운을 다 쏟아낸 듯 보였다. 식당에서 흘린 땀이 아직 마르지 않았는지, 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끼익―!”
마주 오던 트럭과 스칠 뻔한 순간, 깜짝 놀라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바닥에 닿은 건 차가운 물 웅덩이였다. 그 작은 물 웅덩이가 그를 더욱 비참하게 했다. 트럭 기사는 잠시 내려 그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별일 없다는 듯 다시 운전석에 올라 떠났다.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던 그는 문득 동생의 얼굴을 떠올린 듯, 흠칫 놀라고는 이내 몸을 일으켰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에는 절뚝거림이 남아 있었다.
오늘따라 현관문은 더 뻑뻑했다. 다행히 집에 동생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서둘러 옷을 벗었다. 양말을 벗는데 아까 넘어지며 쓸렸는지 피가 흘렀다. 양말에 스며든 피를 찬물에 빨래하곤 서둘러 샤워를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흘렀다. 24세. 성인이지만 아직 그도 보호가 필요하다.
샤워를 마치고 김치찌개를 끓이는데, 현관에서 동생의 기척이 들려온다.
“오! 우리 민재, 왔어? 오늘도 공부하느라 힘들었지? 어서 씻고 밥 먹자!”
민재가 가방을 멘 채 가스레인지로 다가왔다.
“와~! 정말 맛있는 냄새난다! 형, 나 엄청 배고파. 밥부터 먹고 씻을래.”
“그래, 그럼. 손만 씻고 와.”
“아싸!”
민재가 서둘러 가방을 내려놓고, 손을 씻고 나와 그와 함께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식탁에는 김치찌개와 달걀말이, 파래무침과 고등어자반이 놓여 있었다.
민재는 수저 가득 밥을 떠 맛있게 먹으며 TV 리모컨을 켰다. 화면에는 바다를 가득 뒤덮은 검은 기름과, 그 위에서 버둥거리는 바다새가 잡혔다.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번 사고로 수백 마리의 새가 기름에 갇혀 날개를 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순간, 그는 젓가락을 멈췄다. 기름을 온통 뒤집어쓰고 날 수 없어 죽어 가는 새의 모습. 왠지 모르게 자신의 심장 깊은 곳을 누르는 장면이었다. 민재가 맛있게 먹는 소리에 그는 민재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지만, 그의 시선은 화면에 머물렀다.
“와, 역시 형은 식당을 차려야 해. 김치찌개 전문점하면 대박 날 거라니까? 내 친구들도 다 형이 해 준 반찬 맛있대!”
“그럴까? 그럼, 형 돈 좀 더 모아서 식당 차릴까?”
“응! 꼭 그러자!!”
“그래, 그러자! 그럼 민재 들어가는 대학교 앞에다 차려야겠다.”
“그래! 나 열심히 해서 장학금도 받고 교수님들 사랑도 듬뿍 받아서, 과 사람들 다 데리고 갈게!”
“오! 그럼, 파리 날릴 걱정은 없겠네!”
민재는 수저 가득 밥을 떠서 더 맛있게 먹었다. 그는 그런 민재를 보며 미소 짓고는 자신도 수저 가득 밥을 떠서 보란 듯이 맛있게 먹었다.
***
잠을 자려는데, 아까 다친 발목이 쓰라렸다. 그는 방에 불을 켜고 밴드를 찾아 붙었다. 내일도 일찍 일어나려면 빨리 자야 하는데,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아까 식당에서 본 또래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들은 닭갈비와 술을 시키고서는 큰소리로 웃고 떠들어댔다. 어느 대학의 동기들인지, 그가 들어도 모를 교수와 친구들의 이름을 이야기하며 즐거워했다. 그중 누군가가 좋아하는 여성 동기가 있는지, 그 여성의 이름이 수차례 들려왔다. 고백을 어떻게 할 것인지 동기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는 것 같았다.
금요일 저녁이라 정말 바쁜 날이었는데, 그들은 7시부터 들어와 앉아서 10시가 되도록 일어서질 않고 먹고 떠들어댔다. 그는 테이블을 닦고 서빙을 하면서도 또래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자꾸만 시선이 흐르는 것을 의식적으로 돌리려 애썼다. 그런 노력에도 그들의 대화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그의 신경이 그들에게 쏠려 있었다는 반증이었다.
그는 불 꺼진 방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닫힌 커튼의 틈새로 지나가는 차의 불빛이 흘렀다. 자동차의 빛은 잠시 흘러가더니 이내 사라졌다.
인생 최대 고민이 여자친구라니. 그런 삶은 어떤 삶일까. 부모의 그늘 아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들은 알지도 못할 것이다. 모든 감사함은 없어져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닌가. 내 손에 주어진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다시 눈시울이 붉어지고 코끝이 아려왔다. 지금 그의 손에 주어진 것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는 동생 민재가 있다. 민재만은 그런 삶을 살게 할 것이다.
다시, 내일을 위해 핸드폰의 알람이 잘 켜져 있는지 확인한다. 잘 마른 베개에 머리를 베고, 이불을 어깨까지 덮었다. 희미한 섬유유연제 향기가 그를 품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