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버린 이름 3. 무명(無名).
온통 어두운 바다. 무언가 그를 가득 덮고 있다.
무겁다. 힘겹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보지만, 그럴 수 없다. 무언가 그의 몸을 옭아 맨 듯하다.
역겨운 냄새가 그의 코를 찔러 온다. 속이 매스꺼워 헛구역질을 한다. 온통 어두운 바다에 그는 잡혀 있다.
‘아….’
그의 머릿속에 무언가 장면이 떠오른다. 곧이어 그는 주변을 둘러본다.
그곳은 바다. 그러나 온통 검은 바다. 기름이 뒤덮여 제 모습을 잃은 바다.
***
잔잔한 피아노 선율에 그의 잠이 마무리되었다. 슬며시 팔을 뻗어 핸드폰의 알람을 끈다. 오전 5시 30분. 잠시 눈을 감은 그의 마음에 간밤의 꿈이 생각이 날 듯하면서도 나지 않는다.
왜인지 평소보다 몸이 잘 일으켜지지 않는다고 그는 생각한다.
“으자자자”
괜한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켜고, 그는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간밤의 찜찜함을 개운하게 씻어내고, 민재의 아침을 준비한다. 그의 아침소리에 어느덧 민재도 일어나 씻고 있다.
어느새 식탁에는 따끈한 배추된장국, 현미밥, 김과 진미채, 달걀프라이가 놓인 정갈한 아침상이 완성되었다. 두 형제가 정답게 마주 앉았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항상 민재의 아침에 따뜻한 국을 함께 내놓는다.
민재가 뜨끈한 된장국을 한 입 뜨고 중년 아저씨의 음성을 낸다.
“크아, 오늘따라 된장국이 구수하네.”
“하하. 녀석. 많이 먹어. 뜨끈하게 먹고 나가야 하루가 든든하지.”
그는 민재의 복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본인도 아침을 들기 시작했다.
오전 6시 30분. 그가 먼저 집을 나선다.
“형 다녀올게. 민재 용돈은 있지? 학교 잘 다녀오고!”
“응, 형도 안전하게 잘 다녀와!”
“그래, 이따 저녁에 보자!”
그는 아침 7시부터 택배사에 나갔다. 오늘따라 상자가 물 먹은 이불처럼 더 힘겹게 느껴졌다. 상자를 드는 순간, 온몸이 바닷속에 잠기는 듯했다. 그는 묘한 기시감에 휩싸였다.
‘아…. 어디선가 이랬던 것 같은데….’
오전 내내 기억나지 않던 간밤의 꿈이 스쳤다. 검은 바다, 옭아 맨 무게.
“어이, 뒤에 밀렸어.”
박 과장님의 목소리에 정신이 든 그가 깜짝 놀라 발을 바삐 움직였다.
“네! 죄송합니다!”
“죄송은. 어서 움직이자!”
박 과장님의 움직이자는 말이 그에게는 ‘힘내’라는 말로 들렸다.
처음 그가 이곳에 왔을 때는 아저씨들이 많아서, 나이가 어린 그가 겉돌기 일쑤였다. 그런 그를 ‘넌 성실하니까’라는 말과 함께 늘 불러준 것이 박 과장이었다. 그 인연이 쌓여, 지금은 평일 오전마다 정기적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오전 내내 함께 일하고, 직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가는 시간이 그의 퇴근 시간이다. 택배사의 일이 끝나면, 그는 집으로 돌아와 간단히 점심을 먹고 동네 닭갈비집으로 다시 이동한다.
그곳에서 낮 12시부터 밤 10시까지 홀서빙과 바쁠 때는 주방 보조로 일한다. 식당은 사장님 부부와 그와 다른 알바생, 총 4인이 함께 일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경기가 좋지 않자, 다른 알바생 한 명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경기가 좋지 않을 때마다 제일 먼저 아끼는 부분이 인건비임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불안한 하루하루지만 이렇게 일을 해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그가 힘 있게 닭갈비 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점심시간이라 이미 식당에는 어느 정도 손님들이 들어서서 밥을 먹는 중이었다.
그는 서둘러 가방을 계산대 아래 내려두고 앞치마를 두르고 홀로 나섰다. 홀에는 남자 사장님이 넘칠 듯 넘치지 않는 고명을 떨어지지 않게 볶아대고 있었다. 사장님의 볶기 기술은 언제 봐도 부러웠다. 사장님이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집 마스코트가 왔네! 저기 8번 테이블부터 봐 주쇼잉!”
“예, 예, 8번 갑니다.”
사장님의 너스레에 자연스럽게 화답한 그는 오전의 택배사에서 일하는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식당은 시급도 적고 손님들을 직접 상대해야 하지만, 그는 택배사보다는 식당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즐겁다.
사람 사는 구경도 하고, 철판에 닭갈비를 볶으며 귀동냥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마치 주부들이 일일 연속극을 보듯, 손님들은 그의 세계를 넓혀주는 역할을 해 주었다.
어제처럼 또래가 오는 날이면, 그런 삶을 한 번은 살아보고 싶다는 갈망이 들어 힘들 때도 있지만, 대부분 그는 웃으며 즐겁게 일을 하고 있다.
어느덧 밤 10시가 되고, 식당도 마감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주방에서 사모님이 봉지를 들고 나오며 그를 붙잡는다.
“아유, 오늘 내가 밑반찬을 너무 많이 했네. 들고 가서 민재랑 먹어. 어묵볶음이랑 콩나물.”
“와, 감사해요. 사모님 반찬이면, 우리 민재 밥 두 공기도 해치우죠. 잘 먹겠습니다.”
계산대를 마감 중이던 남자 사장님이 시선을 계산기에 고정한 채 말을 보탰다.
“그려, 늦었는디, 어여 가서 동생 밥 챙겨줘. 곧 민재 오겄네잉. 낼 보자고.”
“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내일 봬요.”
가게 문을 닫고 돌아서는 그의 발걸음이 가볍다.
닭갈비집 사장님 부부는 그의 집안 사정을 알고 계신다. 코로나라는 어려운 시기에도 그가 알바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두 분 사장님의 배려임이 분명했다. 심지어 민재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십만 원을 따로 봉투에 챙겨서 동생에게 챙겨주시기도 했다. 그와 민재가 드물게 만난 ‘참된 어른’은, 두 분 사장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