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버린 이름 3. 무명(無名)
기름으로 뒤덮여 어두운 바다 끝. 바다새. 언뜻 죽은 듯하지만, 아직 새는 살아있다. 날개를 펴지 못하지만, 힘겹게 숨을 이어가고 있다.
맑은 바다에 기름을 뒤엎은 것이 누구이던가. 아무 죄 없는 바다새가 그로 인해 죽어간다. 자유를 갈망한 채로.
***
“끼이익. 철커덩”
창 틈새로 들려오는 묵직한 철문 소리에, 문득 새벽 초소를 지키던 날이 떠오른다.
모두가 외롭고 피곤하다던 그 새벽의 경계근무가, 그에게만큼은 달랐다. 초소 가득 울려대는 풀벌레 소리. 깜깜한 하늘의 반짝이는 별과 달. 그 모든 것이 그에게는 ‘자유’였다.
침입자는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혹 나타났더라도 그의 자유를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군생활이 좋았다. 정해진 시각에 먹고 자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곳. 늘 불안과 근심으로 가득했던 삶에서 잠시나마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곳에 그대로 말뚝 박고 싶었다.
하지만 집에 홀로 남겨진 민재를 잊을 수는 없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엄마가 떠나던 날. 민재만큼은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게 키우겠노라 다짐했다.
그가 더 이상 아버지의 술 심부름을 할 수 없게 되었던 날. 그의 아버지의 빈 술병은 그를 향해 던져졌다.
“쨍그랑!”
겨우 세 부자가 몸을 누일 수 있던 작은 방 안은 병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그 정적을 깨뜨린 것은 그의 피였다. 그는 가만히 손을 들어 올려 스미듯 나오는 자신의 피를 바라보았다. 진빨강의 액체는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의 아버지는 그대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깜짝 놀란 민재가 주인집 아주머니를 불러 겨우 추슬렀던 날이다.
그날 처음으로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살아냈다. 날아오는 고지서가 쌓여도 그는 민재에게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학생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적었고, 돈은 늘 부족했지만 그는 버텼다.
그가 성인이 되어, 조금씩 돈을 모으며, 이제는 여느 집처럼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희망을 품기 시작한 그때.
입영통지서가 도착했다.
그는 어린 동생 때문에 미루고 미뤄 뒤늦게 군복무를 하게 되었지만, 막상 부대에 오니 이곳이 그에게는 천국이었다. 몸이 너무 지치고 힘들어, 민재 생각도 하지 않고 잠드는 날이 늘어갔다.
“김상병, 부대에 말뚝 박는 것은 어때?”
그의 사정을 알고 있는 최중위의 집에 초대되어 외출한 날이었다. 밥을 먹으며 중위님 잔에 술을 채우는 그에게 최중위는 친한 동생을 대하듯 말을 던졌다.
“아닙니다. 동생이 혼자 있어서 그건 어렵습니다.”
“얌마, 너 동생 혼자 있는 거 내가 모르냐? 지금은 네가 상병이라 급여도 적지만, 간부 되면 급여도 올라. 알바하고 다니는 것보다 나을 거다.”
그도 알고 있었다. 어쩌면 사회에 나가 알바만 전전하다가 나이가 들어 쓰임이 다하면 자신이 일 할 곳은 더 없어질 것이라는 걸. ‘알바생’이란 이름보다, ‘군인’이란 이름이 자신에게 더 이로울 것이라는 것. 심지어 군생활은 그에게는 그다지 어려울 것도 답답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내려놓음’과 ‘자유’를 느끼게 한 곳이었다.
그는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만, 되려 부대로부터 자신이 보호받는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아직 미성년자인 민재만을 집에 홀로 둘 수는 없었다.
그렇게 그는 전역을 했다.
*** ***
“피식”
그의 입에서 뜻 모를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는 손을 뻗어 턱끝까지 이불을 잡아끌어올린다.
다시 푸른 바다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