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버린 이름 3. 무명(無名)
알람소리에 일어나 창문으로 향한다. 커튼을 젖히자 하얗게 낀 성에가 바깥의 추위를 말해주고 있었다. 창문을 연 순간, 찬 기운이 방 안으로 몰려들었다.
여느 수능날처럼, 매서운 추위였다.
서둘러 씻고 아침을 준비한다. 도시락까지 준비해야 해서 평소보다 마음이 급하다. 찬장에서 보온병을 꺼내어 가지런히 음식을 담았다. 뚜껑을 닫으려는데 그의 손끝이 떨려온다.
떨리는 두 손을 마주 잡고, 고요히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밥에서 피어오르는 따뜻한 김이 방 안 가득 번져갔다.
드디어, 오늘이다.
도시락 뚜껑을 꾹꾹 눌러 닫고, 도시락 가방에 살포시 도시락을 넣는다. 분주하던 그의 손이 잠시 멈춘다. 집안을 한번 둘러본다.
민재가 씻는 소리만 집안에 가득했다.
준비를 마친 민재가 식탁으로 나왔다. 식탁에는 김이 피어오르는 뽀얀 사골국과 흰쌀밥, 조기 구이와 잘 익은 깍두기, 잘게 송송 썬 파가 한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와, 역시 겨울에는 뜨끈한 사골이 최고지! 땡큐!”
평소보다 올라간 민재의 목소리에 긴장감을 숨기려는 것이 느껴졌다.
“뜨거우니 천천히 먹어. 꼭 꼭 잘 씹어 먹고.”
그의 말에 민재가 고개를 연식 끄덕이며, 국을 떴다.
‘제발, 우리 민재 잘하고 오기를.’
그는 차마 입 밖으로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기도했다.
*** ***
입학식에 참여하기 위해 그와 민재가 나란히 캠퍼스에 왔다. 민재 친구들은 무슨 대학 입학식에 참석하냐고 했지만, 그는 꼭 함께 오고 싶었다.
‘우리 민재가 이곳에 다닌다.’
캠퍼스 입구를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는 그에게 민재가 다가와 팔을 얹으며 말한다.
“뭘 그리 멍하니 서 있어? 우리도 사진 찍어야지!”
“그럴까?”
그와 민재가 교문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이 순간에도 그는 지금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사진을 찍고 민재가 씩씩하게 앞을 향해 걸어 나간다. 자신도 처음 와보는 곳이면서, 원래 제 학교인양 거침없이 걷는다.
그런 민재의 뒷모습을 그가 멈춰 선 채로 바라보고 있다.
점점 멀어지는 가 싶더니, 민재가 휙 하고 돌아선다.
“형.”
그가 민재를 지긋이 바라본다.
“이제 형 차례야.”
그러고는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간다.
그는 멈춰 선 채로 마음속의 뜨거움을 움켜쥔다.
다시, 걸음을 옮긴다.
‘이제 형 차례야.’
민재의 말을 되뇐다.
*** ***
저녁을 차리던 그의 바쁜 손이 멈추었다. 그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있다. 파란 하늘과 푸르른 바다. 앵커의 음성이 들려온다.
“난파선으로 인해 기름으로 뒤덮였던 바다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손길이 모여 어느새 깨끗해진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외신들은 대한민국의 힘을 연달아 보도하고 있습니다.”
화면 속에서 새하얀 바다새 한 마리가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가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본다.
지난번 뉴스 속의 기름에 갇혀 있던 바다새가 떠오른다. 죽은 듯 보였지만, 움직이고 있던 그 바다새는 어찌 되었을까 생각한다.
도저히 답이 없어 보였던 기름 덮인 바다를 사람들이 회복시켰다. 불가능으로 보였는데, 해내고야 말았다. 감동과 함께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몰려왔다.
다시, 앵커의 음성이 들려온다.
“이로써, 바다 새도 자유를 찾았습니다.”
그의 눈에 액체가 가득 고여 뜨겁다. 액체를 쏟아내고 싶다. 그는 이런 자신의 모습이 낯설다.
민재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이제 형 차례야.’
*** ***
어두운 바다. 기름에 날개를 펴지 못하는 바다새.
어두운 하늘 사이로 환한 빛이 새어 나온다. 이내 그 빛은 온 하늘을 밝혔다.
그 빛이 닿자 바다는 스스로 숨을 쉬기 시작했다.
바다가 움직이자, 바다는 살아났다.
어느새, 새하얗게 변한 바다새가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간다.
멀리, 그리고 높이.
- 무명(無名)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