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우리 몸이 숫자로 표현될까?

by 이상한 나라의 폴

사우디에 파견되어 3년차를 맞았을 때입니다. 갑자기 오른쪽 무릎쪽 신경이 저려서 걸을 수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디스크 판정을 받고 영상을 받아서 한국으로 휴가올때 디스크 치료차 병원에 들렀습니다. 의사는 디스크 영상에는 별다른 질문은 하지 않고 대뜸 당 검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허리가 아파서 오는 사람들의 80%는 디스크보다 혈당이 높은 것이 원인 경우가 많다면서. 그래서 발견했습니다. 제가 당뇨였다는 것을.


공복 혈당 300이 넘고, 당시 당화 혈색소가 7.0이 넘었습니다. 허리는 당 조절후에 시술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짧은 휴가기간내 치료를 위해 하루 입원해서 병원의 밀착 당뇨 관리를 받고 시술은 다음 날 했습니다.


입원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가족력인가? 현장에서 너무 고생했나? 회사에서 제공하는 식사가 부실했나? 원인은 밖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되돌아 보니 건강검진에서 당뇨 전단계라는 경고가 약 4년 정도 있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1. 성적표

흰 봉투를 받아 든 손끝에 미세한 긴장이 머뭅니다. 일 년에 한 번, 국가가 혹은 직장이 내어주는 일종의 성적표입니다. 빳빳한 종이 위에는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무엇을 먹었는지, 얼마나 움직였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버텼는지가 깨알 같은 숫자로 치환되어 적혀 있습니다.


눈길은 이내 익숙한 곳에 멈춥니다. 공복혈당 102. 참고치 100을 아주 살짝 넘긴 수치입니다. 그 옆에 적힌 '주의' 혹은 '당뇨 전단계'라는 글귀를 보며 안도를 합니다. "아직은 괜찮겠지. 어제 좀 피곤해서 그럴 거야."


하지만 숫자가 정상 범위를 벗어났다는 것은 이미 몸의 정교한 복구 시스템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경고였습니다. 당뇨라는 확진을 받는 순간, 우리는 되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너게 됩니다.


스스로 수평을 유지하던 몸의 항상성이 완전히 무너져, 평생 약이라는 노를 저어야만 혈당의 거친 너울을 견딜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결국 오늘의 수치는 어제 오늘의 피곤함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반복해온 오래된 그래서 생활 습관이 된 결과를 보여줍니다.


2. 지수와 실제 사이

혈당이라는 지표는 겉으로는 피 속에 섞인 포도당의 양을 나타냅니다. 숫자 뒤에는 지난주 어느 날 저녁 늦게 이어진 회식의 잔향이며, 운동화 끈을 묶지 않고 소파에 기대어 보낸 주말의 기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우리 몸속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공장들이 지쳐가고 있다는 위험 신호이기도 합니다.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을 있습니다. 인슐린은 세포의 문을 열어 당(糖)이라는 음식을 들여보내는 친절한 안내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자주, 너무 많은 음식을 예고 없이 세포에게 집어넣으려고 하면, 정작 지쳐버리는 것은 세포입니다.


안내자가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이미 넘쳐나는 음식에 질려버린 세포는 더 이상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슐린 저항성'입니다.


갈 곳을 잃은 당들은 핏속을 떠돌며 혈액을 끈적하게 만듭니다. 흐름을 잃고 무거워진 피는 미세한 모세혈관의 끝에서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게 됩니다.


몸의 가장 먼 곳부터 서서히 산소 농도를 낮추며 말초신경의 숨통을 조입니다. 우리 몸의 이상 신호를 잘 포착해서 개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몸은 아날로그식인데 칼로 무 자르듯 숫자로 병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입니다.


3. 아직은 괜찮다?

우리는 숫자가 '정상 범위' 안에 있으면 안심합니다. "약 먹을 단계는 아니니까"라며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몸은 숫자로만 말하지 않습니다.


계단을 오를 때 유독 차오르는 숨, 점심 식사 후 쏟아지는 참을 수 없는 졸음, 거울 속에서 발견한 예전 같지 않은 칙칙한 안색. 이 모든 것이 숫자보다 먼저 우리에게 도착한 신호였습니다.


우리는 그 신호를 '나이 탓' 혹은 '업무 스트레스'라는 이름으로 잘못 인식하곤 합니다. 당뇨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이 아닙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생활의 지층이 무너지는 현상입니다. 개입이 늦어질수록 회복의 탄력은 줄어듭니다.


4. 수치가 아니라 신호야!

제2형 당뇨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닙니다. 우리 몸은 오늘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정직하게 반응하는 미래의 거울입니다.


우선 숫자 너머의 신호를 읽어야 합니다. 검진표의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몸의 컨디션입니다. 식후 30분의 몸 상태를 관찰하십시오.


몸이 무겁다면 그것은 혈당이 치솟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리고 근육이라는 저금통을 확인하십시오. 우리 몸에서 혈당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곳은 근육입니다.


특히 허벅지 근육은 혈당을 태우는 가장 큰 공장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공장을 얼마나 가동했습니까?


5. 내일을 향해서라면

당뇨는 각종 합병증을 유발하는 무서운 병입니다. 그래서 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관리를 위해 숫자에 매몰되면 안됩니다. 우리 몸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회복탄력성을 유지하는 방안을 함께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바로 지금이 우리 몸에 개입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간입니다. 거창한 것 선언이나 운동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식탁에 오르는 음식의 종류를 바꾸고, 식사 순서를 조금 바꾸고, 짧은 시간이라도 움직이고, 그러면서도 충분히 만족하게 휴식하여 나를 대접하는 일부터 시작됩니다.


10년 후의 우리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혈당은 숫자가 아니라, 우리가 써 내려가는 미래의 기록입니다.

오늘의 우리는 미래의 우리를 위해서 어떤 흔적을 남기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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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