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근무 시간에 갑자기 짝지로부터 연락이 옵니다.
"자기야, 오늘 아버지 퇴원하시는데 집으로 모시고 될까요?"
"몸이 너무 야위어서 맛있는 거 좀 해드리려고"
"어, 모시고 와..."
셋째 딸의 매력은 끝이 없습니다.
모시고 오라고 대답은 했는데 장인어른이랑 며칠씩 보낸 적은 없어서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식사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드려야 할지?
지금 상태는 어느 정도인지?
시술받으신 데는 얼마나 회복이 되셨는지?
보양이 되는 거 뭘 사드려야 할지?
최대한 편하게 해드리려고 해도 벌써 의식이 됩니다.
하지만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니 아무것도 아닌 괜한 걱정이 되어버렸습니다.
"O 서방 신세 져서 미안하네"
반갑게 웃으시면서 악수를 청하시는데 갑자기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잘해드리려는 마음의 부담이었을까요?
같이 지내는 것이 불편하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한 것 같아서 쥐구멍을 찾고 싶었습니다.
건강하게 돌아오신 것만으로 반갑습니다.
그러고는 장인어른으로부터 무용담 같은 그날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친구분들과 점심 식사 약속이 있던 날 아침부터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이 속이 답답했습니다.
소화도 시킬 겸 산책도 한 시간 정도를 하시고는 식당으로 갔습니다.
식당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음식을 주문해서 식사를 시작하려던 때 의식이 희미해졌습니다.
너무도 다행인 것이 친구들이 바로 앞에서 이상함을 느끼고 119를 불렀습니다.
당시 장인어른은 말하고 싶어도 말이 안 나오고 몸을 움직이려 해도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꼼짝 못 하고 땀만 비 오듯이 흘렸습니다.
응급실에서 잠깐 의식을 찾으셨을 때 퇴원하겠다고 하시다가 의사의 만류로 검사를 해보셨다 합니다.
검사 결과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바로 시술 후에 오늘 퇴원하셨습니다.
영화같이 긴박한 일주일이었습니다.
저녁 식사 때 이야기하시는 걸 들어보니 큰 걱정은 내려놓아도 될 것 같습니다.
세트로 된 잠옷을 꺼내 드리고 잠자리를 봐드렸습니다.
식탁 위에 약 봉투가 만만치 않습니다.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입이 심심하던 밤 시간에 짝지가 군고구마, 우유, 은행을 간식으로 꺼내왔습니다.
이승만 대통령부터 박정희 대통령까지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를 듣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장인어른이 좋아하시는 레퍼토리입니다.
한 다섯 번쯤 들었는데 백번은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인어른과 동갑이었던 아버지가 2년 전에 비슷한 일을 겪고서는 회복을 못하고 돌아가셨는데, 한 분이라도 건강하게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부모님이 혼자 지내고 계시다면 한 번씩 병원을 같이 다니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들은 몸이 아파도 괜찮다고 하십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한 끗 차이입니다.
잠깐 의식이 돌아왔을 때 장인어른께서는 갑자기 눈물이 많이 나셨다고 합니다.
이유를 여쭤보지는 못했는데, 여러 가지 복잡한 심정일 것 같습니다.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맹목적인 쾌락을 좇으며 살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되 생산적인 것들로 삶을 채우고 싶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