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엄마의 길 안내

(Feat. 둘째인 아들의 취업)

by sommeil



코로나가 2019년 겨울부터 시작됐다.

UN에서 공식적으로 명명하기는 Covid 19로

전 세계를 강타하여 모든 하늘길과 외부출입이

제한되던 때였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절인 2020년, 2021년.

두 아들의 대학 입학의 해였다.

모든 수업은 비대면으로 진행되었고

제대로 수업도 못해보고 오리엔테이션, MT도 제대로

못 가보고 신입생으로서의 즐거움도 전혀 만끽하지

못한 비운의 학번이었다.


둘째는 20학번, 셋째는 21학번이다.

둘째는 대학 1학년을 온라인으로만 시간을 보냈고

학과 친구들도 단톡방에서만 만났다.

그나마 생각 있는 1년 선배들이 학교로 모임을

주선해서 신입생들을 챙기고 학교 시설등을 소개하고 탐방하였다.

원래도 내성적이었던 둘째는 학과 친구들과 바로 친해지지 못하고 그대로 헤어졌다. 낯가림이 심하기도

했지만 막상 대학에서 만난 학과 친구들은 실력들도

쟁쟁하고 자신과는 잘 맞지 않은 느낌이었다고 후일담을 내게 말해준 적이 있다.

수업도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서

나는 둘째에게 1학년 마치고 군대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결국 둘째는 군대를 갔고 1년 6개월의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전역하여 2학년으로 복학하였다.

2학년부터 본격적인 전공수업이 시작됐고 경제학과

국제 통상 관련법을 영어로 수업하다 보니

전역 후에 역부족이었나 보다. 둘째는 1학기만 다니고 전공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휴학을 선택했다.




나는 세 아이들 모두 본인이 원하는 학과를 지원하게 하여 대학에 입학하게 하였고 본인 성적에 맞춰 대학을 정해주었다.


다행히 3명 모두 재수하지 않고 대학에는 입학했지만 둘째인 경우는 본인이 생각한 무역학과 (요즘은

국제무역학과나 국제통상학과로 학과명이 바뀐 대학이 많다.)로 진로를 정하였다.

내가 20년 넘게 무역 통역 프리랜서로 일하는 걸

보아서 그런지 무역학과를 가겠다고 했다.

둘째도 자기 생각에는 그 학과를 가면 취업이 쉬울

거라 생각하여 선택한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나는 당연히 둘째가 잘 적응할 줄만 알았다.

본인이 선택한 학과라서 전혀 학과에 대한 부담감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학과 공부에 대한 압박감이 컸고 둘째 말고도 같은 학과 학우 중에도 중간에 휴학을

하거나 전과를 하는 친구들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웬만하면 졸업만이라도 하자는 식으로 둘째를

설득했지만 둘째의 말은 학과 공부가 본인의 능력 밖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몇몇 교수님들의 까다로운 성적관리 방식이나 과제들이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둘째의 마음도 이해가 됐고 시간을 갖자고 휴학을 허락했다. 당시 둘째는 전과할 준비를 제대로 못하였기에 휴학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1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아들은 복학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학과나 다른 대학으로 편입할 생각도

없는 듯이 보였다.

둘째는 내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나도 속이 상하고 마음이 아팠지만 당사자인 둘째가

더 마음고생이 심할 거라는 생각에 잠시 쉬어가자는

식으로 내버려 두었다. 남편도 너무 몰아붙이거나

다른 공부를 해보라는 말을 따로 하지 말자고 말했었다.






그때부터 둘째는 이곳저곳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특유의 친근함으로 말도 없던 아이가 아르바이트

일자리는 잘 찾아 들어갔다. 중견기업의 옷 브랜드

매장에서도 일하고 중간중간 이자카야에서도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한창 공부해야 할 시기에 돈을 버는

둘째가 안타까웠다.

하지만 20살이 넘은 아들의 의지와 생각을 꺾고 싶지 않았다.


나름의 생각이 있겠지 하며 기다려주었다.


못마땅하고 속상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래도 의류 매장에서는 나름 팀장이나 매니저에게

일을 잘하는 직원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언젠가 막내와 매장 세일기간 마지막날 퇴근 시간에

맞춰 둘째가 일하는 매장을 방문하여 바쁘게 일하는

둘째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곳은 중국 관광객 손님이 많은 곳이라서 계산할 때 영어가 되는 둘째가 모든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둘째 말에 의하면 외국 손님만 오면 모두 둘째가 처리한다고 하였다. 옷 색깔, 사이즈, 수량 등 재고부터 손님의 취향을 파악하기까지 자연스럽게 카운터에서

포스기를 만지고 있었다. 단지 아쉬운 것은 직장에서도 둘째가 휴학생이라는 점 때문에 정식 직원으로서

채용이 제한되었다. 그것이 항상 고민거리였다.


시간이 흘러 둘째는 다른 아르바이트 직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일을 시작했다.

남편과 나는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건강만 잘 챙기라는 말만

해주었다. 막내와는 다르게 속얘기를 잘하지 않는

성격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지 않으면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둘째가 언젠가부터 집안에만 처박혀 친구도

만나지 않고 가끔씩 저녁에 게임만 하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내가 지난 5월에 서울에 있었을 때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이제는 알바자리가 아닌 직장을 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나도 한참을 기다린 끝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둘째는 알아들었는지 말없이 자리를 뜨고 한동안

말이 없다가 최근에 '사람인'에 낸 이력서를 보고 취업제안이 들어왔다는 말을 내게 해주었다.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1차 면접은 통과가 되었고 내가 태국으로 입국한 후에 최종 면접에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둘째가 원하던 패션 관련업종. 그것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글로벌 명품 브랜드 패션 어드바이저

어시스턴트로 최종 합격한 것이다.

나는 잘 버텨준 둘째가 고마웠다.

암튼 잘 해냈고 앞으로 잘할 거라고 믿는다.





부모라고 모든 걸 아는 건 아니다.

부모라고 다 잘하는 것도 아니다.

끝까지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게 부모라고 생각한다.

자식이 가장 힘들고 지칠 때 찾는 것이 부모다.

부모는 쉼터와 같다.

결국 기다려주면 언젠가는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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