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워킹맘의 육아

by sommeil



나의 첫 통역은 둘째가 뱃속에 있던 7-8개월쯤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우연히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아이들이 유치원,

초등학교 다닐 때 정말 일도 많이 했고 바빴었다.

퇴근 후에는 집에 와서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들 숙제도 봐주고 준비물도 챙기고 애들도 재우고.

지금 생각해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다.


특히 산업박람회에 3-4일을 계속 일을 나가면 아이들을 더욱 챙길 수가 없어서 냉동실에 냉동식품을

4일 치 3명분으로 총 12개를 사놓는 게 일상이었다.

하루는 딸이 냉동식품 지겹다고 (모든 브랜드의

냉동식품을 다 먹어서) 그만 시키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퇴근 후에 지친 몸을 이끌고 저녁을 해줄

여력이 없어서 저녁을 간단히 해줄 요량이었다.

대신 일이 없는 날에는 아이들이 원하는 음식을

자주 해주곤 했다.

당시 TV 인기프로그램이던 해피투게더의 야간매점이란 코너에서 1등 한 요리는 아이들에게 모두 만들어

주었다. 그렇다고 내가 요리를 아주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매번 열심히 해주고 먹을 만큼은 해주었기에 아이들은 엄마가 그때 맛있는 거 자주 해줬었다고

지금도 말을 한다.


아이들이 유치원, 초등학교를 다닐 때 내가 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약간은 서먹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다른 엄마들은 집에서 주로 있는데 엄마는 매일은

아니지만 일이 생기면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오니까 당시에는 항상 집에 있는 다른 엄마가 부러웠었나 보다. 엄마가 내일 일하러 간다고

하면 얼굴 표정이 밝지 않았었다.

그냥 엄마가 집에 없는 게 싫은 것 같았다.


한 해 두 해가 지나고 나도 일이 익숙해지고

애들도 엄마가 워킹맘이란 사실을 받아들였을 때는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서부터였고 아이들이 중학생이상이 되면서부터는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을 보이고

질문을 하기까지 했다.

오늘 일한 중소기업 대표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어떤 업종이신지, 오늘 바이어들은 어떠했는지,

제품은 어떤 게 있는지 등 꽤 구체적으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그저 엄마가 집에 없는 게 싫었었는데 어느새 아이들도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지 나가면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일을 하는지 자세하게 물으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가장 통역하기 쉬운 식품, 화장품부터 좀 어려운 기계나 시스템, IT, 의료용품이나 장비, 화학제품등

분야는 다양했다.

특히 막내는 관심이 많아서 내가 어느 업종이라고

설명을 하면


"오늘은 할만했겠네."

"오늘은 좀 힘들었겠다."


라는 식으로 나름의 평가를 하기도 했었다.


한 번은 게임업체 통역이 들어와서 그때 둘째와

막내에게 여러 가지 게임용어를 물어봤었던 기억이

있다.

RPG 게임은 Role Playing Game의 약자로 아이들이 설명해 주어서 통역을 알기 쉽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밖에 로봇 조립업체도 통역한 적이 있어서

시제품으로 들고 온 샘플을 그날 수고했다고 대표님이

주셔서 아들들에게 선물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아주 작은 추억과 기억들이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큰 용기와 자존감 형성에 도움이 많이 되었던

거 같다.


그래서 둘째는 대학을 국제통상학과로,

막내는 호텔경영학과로 선택하여 갔다.

둘째는 적성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대학을 휴학하고

군대를 다녀와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을 쌓았다.

내심 학업을 마치지 않아서 부모로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나는 엄마로서 항상 아들을 믿어주었다.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과 다양한 인간관계를 거치며 최근 글로벌 명품 패션 어드바이저에 합격했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듯이 2주 후 출근을 앞두고 있다.

막내는 군대전역 후 복학하여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이들 모두 본인의 인생이 있다.

그것은 부모의 인생과는 또 다른 본인들의 삶이다.

나는 부모의 역할은 이제는 끌어주는 것이 아니라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본다.


요즘 10대들은 우리 때 10대 때와 다르다.

디지털 세대라서 트렌드에 민감하고 세상물정을

우리 때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한다.

옛날 사고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워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제는 아이들의 생각을 듣고 그들의 생각을 읽고

거기에 맞추어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내가 아직까지 통역일을 하는 이유는 현재의 트렌드를 읽기 위함이다.

무엇보다 시장을 알기 위해서는 현재 트렌드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 가능한 제품이 나오고 그것을 계약까지 성사시켰을 때의 희열.

그래서 누구보다 시장보는 눈이 남들과는 다르다.

내가 상담했던 제품이 시중 백화점이나 로드샵에

깔릴 때 그 기분은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마도

모를 것이다.

그것도 국내도 아니고 해외에서 한국제품이

출시되고 있을 때의 기쁨이란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물론 이런 경우는 일반 소비재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산업용 제품으로 한국제품이 해외시장에서

인정받을 때에는 나도 모르는 애국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이들도 그런 나를 가까이서 옆에서 보고 배워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측면이 남다른 면이 있다.


교육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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