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한국에서의 마지막 밤

by sommeil



내일이면 방콕으로 떠난다.


그동안 짧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아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도 만나고 좋았다.

마지막 1주일은 시댁에 있느라 남편과 어머님의 스케줄에 맞춰 지내느라 브런치를 여유롭게 읽을 시간도,

글을 쓸 시간도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긴 추석연휴로 오랜만에 서울에서 추석을 보냈고 한국에서의 명절

분위기도 느낄 수 있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막상 한국을 떠나려니 아쉬움이

남는다.

매번 방콕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탈 때 설레는 마음과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못했는데 막상 있어보면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일에 의미부여를 한 것이 부끄럽기만 하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별 일 아닌 것이 별 일이 되는 것처럼 한국에 대한 그리움은 감출 수 없는 현실이 된다.


릴스나 쇼츠에서 보던 서울과 내가 직접 보고 느끼는 서울은 조금은 달랐다.

줄 서서 대기까지 하면서 맛집이라 찾아간 곳은 뭐 그렇게까지 맛집은 아니었었다.

물론 정말 맛있는 곳도 있었지만 오히려 바이럴로 유명세를 탄 그런 곳도 꽤 있었다.

서울의 분위기를 아이들이 틈틈이 알려줬고 6개월

만에 한국을 와도 변화무쌍한 한국은 트렌드와 분위기에 민감했다. 없던 가게가 생기는 가 하면 못 보던 새로운 건물도 생기고 방콕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방콕은 항상 더운 날씨처럼 말 그대로 정말 변함없는, 변화 없는 곳이기도 하다.

그나마 요즘 들어서 핫하다는 '라부부'인형의 매장인

Pop Mart매장이 ICON SIAM(아이콘 씨암)

이라는 대형 백화점에 입점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도 아직 가보지 못했다.)

이제는 식상한 (물론 나에게만 국한되는 얘기지만)

태국의 이야기와 분위기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가지는 않는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도 한국에서의

새로운 분위기가 크게 와닿지 않는 것처럼,

그들에게는 일상이고 삶이니 디테일한 변화나 분위기가 크게 와닿지는 않을 것이다.






어제는 모처럼 아이들, 어머니와 다 같이 저녁에 외식을 했다.

외출한 김에 어머니의 선글라스와 운동화도 하나 사드렸다.

1주일 이상 시댁에 머물면서 식사며 잠자리를 신경 써주신 어머님께 뭐라도 하나 사드리고 싶었다.

마침 시댁 주변 한강공원에 어머니, 남편과 산책을

나갔다가 어머니께서 자연스럽게 검은색 선글라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쇼핑도 하면서 하나 구입했다.

예전에 사드린 운동화도 밑창이 닳았다고 하셔서 함께 쇼핑하면서 직접 신어보시고 새 모델로 하나 사드렸다. 마침 필요하신 것을 선물해 드리니 기분이 좋았다.

어머니도 매우 마음에 들어 하셨다.


결혼 29년, 내년이면 30주년이다.

내게 어머니는 시어머니이면서 친정어머니 같은 존재가 되었다.

결혼 후 2001년 친정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2003년 시아버지도 갑자기 돌아가시고

2022년 친정아버지도 지병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방콕에서 11년의 시집살이를 하는 동안 다양한 일들이 있었고 나도 이젠 5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어머니의 딸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어머니도 방콕에서 오래 사시다가 서울에 들어오신 지 10년이 훌쩍 넘으셨다.

누구보다 우리의 삶을 잘 이해해 주시는 분이기도 하고 항상 우리(남편과 나)를 잘 챙겨주시기도 한다.


물론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하지 않는가.

직선적인 말투와 약간의 짜증 섞인 잔소리는 어머니의 독보적인 캐릭터다.

나도 그 캐릭터를 이해하기까지 2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이제는 무슨 단어만 말씀하셔도 바로 알아듣는다.

하지만 여전히 잔소리는 변함없으시다. ㅎㅎ

그러면서 우리를 챙겨주는 어머니는 츤데레이시다.

지금은 그 잔소리가 대화의 양념 정도로 생각해서

뭐라고 하셔도 타격감은 전혀 없다.


내가 지나가는 소리로 캠벨 포도가 먹고 싶다고 한 걸 기억하시고 망원시장에 가서 포도 1박스를 사 오셨다. 이러니 내가 잔소리를 하셔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지.

우리의 아침을 준비해 주시면서 시장에서 사 온 식재료도 아낌없이 나눠주신다.

내가 사려고 했던 동전 육수, 다시마, 황태도 다듬어서 챙겨주셨다.

홈쇼핑에서 구매한 기미방지용 영양크림도 슬쩍 건네주시고 시이모한테 선물로 받은 오메가 3 약도 한병 챙겨주시니 이제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달콤한 언어로

들린다.

이렇게 되기까지 물론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제 가방 쌀 준비를 해야겠다.

어머니가 안 입는다고 주신 바지 2개도 있다.

물론 내 취향은 아니지만 방콕에 가져가기로 했다.

그게 마음 편하고 어머니도 좋아하실 거라 생각되어서.


항상 떠나는 사람이 아닌 언젠가는 서울에 머물 사람이 될 수 있겠지

주위 친구들은 나를 항상 떠날 사람 취급을 한다.

나도 서울에서 태어나고 20대까지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점점 외국인 취급을 한다.

아쉽지만 그들에게는 그렇게 보이겠지.

그래, 이런 한순간 한 순간들을 한국 생활 적응기로

생각하자.

그게 마음 편하다.

다행히 이번에는 남편과 같이 출국한다.

마지막까지 어머니가 해주시는 맛난 한식 한 번 맛있게 먹고 내일 방콕으로 떠나야겠다.


서울이여, 안녕

조만간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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