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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혼자서 출산 그래도 괜찮아

병원 로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니

by 고트

막달이 될 때부터 시댁에서 지내야 했다.

맞는 말이다.

오빠 없는 시간에 진통이 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루에 두세 시간 같이 있는 게 전부인데. 그래야 오빠도 신경 쓰지 않고 일할 수 있을 테니. 별말 없이 원하는 데로, 하라고 하시는 데로 하는 것이 나에게는 최선이었다. 오빠는 여전히 새벽 3시에 일을 나가면 밤 12시가 되어야 들어왔다.


어머니와 함께 산부인과를 갔다. 예정일이 보름이 지나서야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하루반 진통을 하는데도 우리 아이는 세상에 나오고 싶지 않은가 보다.

오빠는 퇴근하고 12시가 넘어 병원에 와서 새벽일 가야 할 시간까지 곁에 있어 주었다. 나의 무서움 보다 오빠는 더 큰 짐을 지고 사는 사람 아닌가. 잡을 수 없다.

" 잘할게. 다녀와"

" 새벽일 끝나면 바로 올게" 컴컴한 병원밖으로 사라지는 그림자. 그리고 분만실로 옮겨진 나.


어머니는

" 분만실은 산모만 들어가는 거라고 하니 나는 병실에서 기다리마. 너무 피곤하다. 며칠 째니. 네 옆산모는 저녁 먹고 돌아다니다가 30분 만에 아기 낳고 나오던데 말이야 "


"네. 휠체어 타고 들어오는 거 봤어요."


"네 엄마는 여섯이나 낳았다면서 너는 왜 이러고 있니"


혼자 분만실에 있으면서 생각했다. 다 괜찮다고 정말 다행이라고. 우리 아기를 조산원이 아닌 산부인과에서 낳게 되었다고.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 할아버지 거기에 고모까지 있는 가정을 가진 아기. 진통이 한 번씩 흔들고 지나갈 때마다 되뇌었다. 사랑해 줄게. 지켜줄게. 나도 지켜줘.


갑자기 간호사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급히 들어오신 의사 선생님. 네모난 기계에서 뽑아져 나오는 종이를 훑어보며 보호자를 찾는다.

" 저한테 이야기해 주세요. 아기아빠는 8시에나 올 수 있을 텐데" 누가 해주었는지도 모르는 짧은 설명. 아기에게 산소공급에 문제가 생겨서 급히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술실로 옮겨지는 침대 위에서 생각했다. 외롭지 않다. 무섭지 않다. 나는 세상에 무서울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아기만 건강하다면 다 괜찮다.


수술한 배가 흔들리며 통증이 몰려왔다. 거즈가 덮인 배꼽아래는 한 뼘 반이 넘는 꿰맨 살들이 흐물거렸다. 무통주사라는 것이 있는데 15만 원이란다. 맞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에겐 너무 큰돈이다. 자연분만 했으면 안 들어갈 돈이 아닌가.


앞침대의 산모는 친정 엄마가 사과를 숟가락으로 긁어 먹여주고 있었다. 넋 놓고 앞 산모를 바라보는 나에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너 새벽 불 꺼진 병원로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니? 수술동의서를 나보고 당장 써오라는데 이걸 사인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내 평생 별 걸 다 해본다."


어머니도 나의 시선을 따라 앞산모를 힐끗 보고 병실을 나섰다.

"산모에게 신 사과는 좋지도 않다. 잇몸에 무리도 가고"


나에게도 친정엄마가 있다. 버거운 삶의 짐을 스스로 선택한 여자. 이런 일로 불러 올릴 수 없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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