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가란다. 미련이나 아쉬움은 다 놔두고 혼자 떠나란다.
산소통.
출국 전야이다.
밤 9시가 넘었다. 미국에 사는 친구이다. 한국에 잠시 머물고 있다. 먼 길을 떠나는 나에게 꼭 주어야 할 물건이 있단다. 친구가 머무는 호텔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다 되어 간다.
로비에서 친구를 만났다.
친구가 준 것은 산소통이다
안데스는 백두산보다 높단다. 산소통이 없으면 고생한단다. 세 개나 준다.
고맙다.
그러나 그 산소통은 출국하면서 공항에서 버려야 했다. 핸드캐리가 아니라 체크인 백에서 넣어도 안 된단다.
그 친구에게 공항에서 그 산소통을 버려야 했다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무덤에 까지 비밀로 하려 한다.
고맙다고, 그 산소통이 없었으면 나는 코스코에서 미츄팍츄에 가기도 전에 죽었을 거라고, 참 고마웠다고. 그 친구의 따뜻한 마음에 아쉬움이 남지 않게, 그렇게 인사를 하려 한다.
인사도 못한 친구에게
떠나기 전에 전화를 해야 할 명단에 그 친구가 있었다. 가장 신경이 쓰이는 친구 가운데 한명이다
공유하는 추억이 많은 친구이다.
그 친구가 그런 병에 걸릴 줄은 정말 몰랐다. 건강해 보였다. 체력도 좋았고, 무엇보다 의료종사자이다. 그런데 예후가 좋지 않은 악성 질병에 걸렸다.
나만 가는거 아니야. 너랑 같이 가는 거야.
힘을 내.
꼭 나아서 다음엔 같이 가는 거야.
전화하면 그런 이야기를 하려 했다.
그 친구에게는 전화를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많이 아프다고, 무엇보다 본인이 힘들어 한다고.
전화도 하지 않고 떠나왔다. 간다고 말도 못했다.
공항검색대에 걸리다.
장수시대가 맞다. 백세 혹은 거기에 근접한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친구들이 꽤 있다.
그 심정을 안다.
긴 여행은 꿈도 못 꾼다.
늙으니 몸이 여기저기 아프다. 혹은 아플 예정이다.
병원 곁을 떠나기가 두렵다.
현업에 있는 친구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노인들이 창업해서 아직까지 품에 안고 있는 사업은 대부분 사양산업이다. 이미 수명이 다한 업종이다. 팔지도 못하고 물려주지도 못하고 그냥 부여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역시 남에게 맞기고 훌훌 떠나지 못한다. 여행은 가고 싶어도 남미까지 멀리 가지 못한다.
그 친구들을 마음에 담고 떠나려 한다.
그런데 공항 검색대에서 걸렸다.
혼자 가란다.
친구들이야 그냥 조국의 하늘에 맞기고,
너나 잘 하란다.
내 마음을 뒤져서는, 미련. 못 버림. 애증. 뒤 돌아봄을 다 버리고 가란다.
언젠가는 이렇게 떠날 거라면서.
혼자 가란다.
아내가 공항에 와 주었다.
아내는 비행기 표가 없다.
공항버스를 태워 먼저 보냈다.
아내가 떠나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 그 넓은 공항 대합실에 나 혼자 남았다
그렇게 나는
혼자서 출국했다.
빈 가방에 빈 마음으로 출국 해야만 했다.
그 먼 길을 나 혼자서 어찌 가라고
그런데, 그 길은 혼자 가야 하는 길이란다.
03 Mar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