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롭다.
내일 간다.
오늘 사무실을 대 청소했다. 한달 넘게 자리를 비우니 사소하게 정리 할 것이 많다. 화분들에 물을 흠뻑 주었다. 긴 시간 혼자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릴 낡은 자동차를 위해 배터리를 갈아 주었다.
출국 전에 인사 할 사람들을 정하고, 직접 전화를 할 사람과 메신저로 인사할 대상을 구분했다.
여행자 보험에 가입했고. 전화를 로밍했다.
이제 가방만 싸면 된다.
간다. 나는 내일 간다.
왜 왔지?
먼저 가신 남미 선배님들의 하나 같은 겸험담이다.
남미에 가면 꼭 느끼게 된단다. 왜 왔지. 내가 여기에 뭐하러 왔지?
내가 지금 여기 지구 반대편에서 뭐하고 있지?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남미를 떠날 때면 여지 없이 느끼는 공통적인 감정이라고 한다.
잘 왔다. 오길 잘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면 남미는
여행자의 마음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서 쉼터가 된다고 한다. 일상에 찌들어 살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추억의 오아시스가 된다고 한다. 영혼의 쉼터라고 한다.
나도 그럴지 모른다. 남미의 밤에, 몸서리 치는 외로움에 스스로에게 화를 낼 것이다. 왜 왔지?
여행자의 자세
떠나면서 편지를 준비했다. 가족들에게 남기는 편지이다. 내일 공항버스 타러 가면서 슬며시 식탁 위에 놓고 나올 심산이다.
작은 이별이 슬프다. 나도 슬프고 가족도 슬프다.
그러나 우린 언젠가 진짜로 헤어져야 한다.
언젠가 큰 이별도 올 것이다. 나는 떠나고 가족들은 남고.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 웅큼 부토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롭다.’. 정비석님의 수필 산정무한 중 일부이다.
작은 이별은 큰 이별의 연습니다.
나 없이도 가족들이 일상을 유지하면서 잘 사는 것.
꽃처럼, 별처럼,. 새처럼, 바람처럼. 나그네 되어 다녀오리라.
아무것에 연연하지 말고, 가지려 하지도, 더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으리라.
늙은 나그네는
가야 할 길이 지나온 길 보다 형편없이 짧지만
감사하며 남은 길을 묵묵히 걸어 가리라.
전쟁터 같았던 지난 날들
살아 남은 것이 고맙다. 생존해서 내일 남미 여행을 갈 수 있음이 기적이다.
모든것이 고마울 뿐이다.
03 Mar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