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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바이러스가 있다. 치명적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나는 아르헨티나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by B CHOI


남미 바이러스가 있다.

감염되면 약이 없다. 증상은 단순하다. 남미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전염성도 있다.

누가 간다고 하면 나도 가야 한다. 안 가고는 못 배긴다.


그 남미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리스에 가장 많은 비중을 두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 부에노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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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은 컬러풀하고, 거기 웃옷을 벗은 인상 좋은 젊음들이 노상카페에서 맥주를 마시고, 음악이 있고, 그 음악에 맞춰 사람들은 너 나 없이 탱고를 출거라는 상상을 한다면

그건 영화 속 한 장면일 뿐이다.


오벨리스크를 출발해서 마요광장. 상업지구. 대성당 등 시내를 샅샅이 뒤졌다.

없었다.

부에노스아이리스에 낭만은 없다.

여긴 관광지라기보다는 생활공간이다. 도심관광은 시스템조차 별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시내에 영화관이 없다.

뮤지컬 오페라 같은 공연장은 많다. 그래서 부에노스의 중심가를 걷다 보면 뉴욕 맨해튼의 브로드웨이에 있는 착각이 든다. 확실히 길가 극장의 간판은 아날로그의 매력이 있다

그러나 그 공연장은 매일 열지 않는다. 주말과 일주일에 몇 번 문을 열 뿐이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극장 앞이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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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지구를 걷다가 버스가 길가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버스에서 누군가가 소매치기를 당했고, 그래서 버스는 정차하고 경찰의 검문이었다.

허무하다. 잃어버리고 나면 가치가 느껴진다. 피해 여성인 듯 눈물짓는 어린 여성과 그 여성을 위로하는 할머니 승객이 다정하다.


멀쩡한 중년신사를 경찰이 막 꿇어 앉힌다. 때린다. 가방을 뒤지니 훔친 물건이 나온다. 물건은 매장 직원에게 확인하고 돌려준다.


물가는 결코 싸지 않다.

남미가 대체적으로 그렇지만 아르헨티나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혼자서 식당에서 제대로 한 끼 먹으려면 우리 돈 5만 원은 족히 든다.


과일은 달지 않다.

맛있는데 뭔가 아쉬운 맛이다.

나는 내가 인위적으로 당도를 높인 국산 과일에 너무 길들여 있음을 여기에서 알게 되었다.

내가 아는 맛이 그 과일의 고유한 맛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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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길을 벗어나 골목에 들어서면 거긴 사람들이 사는 공간이다.

골목은 깨끗하다.

사람들이 스스로 청소를 한다.

청소는 구청에서 하는 것이고 나는 버릴 권리가 있다는 태도는 여기에선 안 먹힌다.

쓰레기를 줍는다. 정말 신기한 모습이다 그래서 골목이 깨끗하다.


사람들이 골목을 가다가 만나면 서로 인사한다. 이야기를 한다.

작은 가게들이 있다.

거기서 사람들이 물건을 산다.

사람 체온만큼의 온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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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색하지 않다.

경제는 좋은 듯하다. 개발이 한장이다.

딱 봐도 서울 강남 한강변이다. 벌판에 지하철이 먼저 뚫려서 다니고 있고, 거기에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높은 아파트가 신축 중이다.


서람들은 그리 없어 보이지 않는다. 친절하다.

말이 안 통해도 상관없다. 근본적으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남을 잘 돕는다.

느껴진다.


길을 물으면 그 순간 내가 아주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왜 부에노스 사람들은 이다지도 다정하고 순박한 것인지. 눈물이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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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는 돈키호테일지 모른다. 영국과 한판 제대로 전쟁을 벌인다.

화양연화가 있다. 한때 세상이 가장 부러워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에바 페론. 빈민가 출신 30대 여성이 최고 권력에 오른다.

남자들이 잘 생겼다 축구를 잘한다..


뜨거운 나라 아르헨티나에서

늙은 나그네는

오열한다.


심장이여. 태양이여. 오. 나의 붉은 피여.

아르헨티나에서 아르헨티나가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함께 뜨겁지 못함이 이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





02 Feb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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