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장애인을 위한 승마장... 이들처럼 살아야 하지 않을까?
1월의 끝자락.
차가운 겨울바람이 숨을 고르는 틈을 타서 지로스 파크(G-Ross Lord Park)로 향한다.
짐승들이 노닐던 야생의 숲에도, 뱀처럼 구불구불 흐르는 개천 위에도, 사람들이 모여 놀던 잔디밭에도 흰 눈이 수북이 쌓여 있는데 눈앞에는 아스팔트로 된 산책길이 푸른 정맥처럼 드러나 있다. 이 폭설에도 시에서 운용하는 제설차가 산책로를 뚫어놓은 것이다.
덕분에 잎이 무성할 때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던 숲의 진면목을 젖지않는 발로 누비며 볼 수 있다.
겨울 숲은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추상화처럼 굵은 직선들과 여백으로 형체를 드러낸다.
두터운 눈을 뒤집어쓴 채 주검처럼 시립해 있는 너도밤나무와 자작나무들,
그 사이에 빗장처럼 엉키고 설켜 있는 관목들은 이들이 지난여름을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또 차갑고 거칠어진 줄기를 거스르며 여전히 푸른 잎을 자랑하는 상록수와 그들이 만들어 내는 하늘하늘한 공간.
비가 조금만 와도 범람하던 공원의 저지대를 빗자루로 쓸은 듯 뒤덮은 흰 얼음과 군데군데 불끈 솟아있는 냇돌들이 이루는 비정형의 조화. 그리고 그들을 훑으며 흐르는 시냇물의 속삭임은 칸딘스키(W.W. Kandinsky)화폭의 다양한 조형들과 그들이 일구어 내는 음악적인 리듬을 떠올리게 한다.
하늘은 막 피운 연기처럼 낮게 내려와 있다.
채 여며지지 않은 하늘 깃에서 빠져나온 찬바람이 나를 감싼다. 바람은 내 상념의 문 앞에 다가와 노크를 한다.
나는 겨울 숲의 고요함과 아름다움, 얼어붙은 자연이 주는 단순함과 엄숙함 속에서 봄, 여름, 가을의 숲과는 다른 경외감을 느낀다. 숲은 얼어 있지만 그 속에는 삶과 죽음 그리고 기다림이 순환한다. 그 너머에는 살아있는 것들의 자유스러움이, 그리고 살아 있지 않은 것들, 즉 돌과 바람 같은 것들의 자연스러움이 더불어 있다.
개체는 자유스럽되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워야 함은 인간 삶의 본질과도 연결된다.
세상이 점점 더 정형화되고 경직될수록 자연에서 격리된 존재의 고독은 그래서 더욱 심화된다.
겨울 숲의 숨소리는 푸른 숲이 토해내는 바쁜 숨소리와 다르게 깊고 나지막하다. 불현듯 울리는 작은 소리 하나도 공명 없이 되돌아온다.
이러한 겨울 숲의 적막함은 어쩌면 인간 내면의 고독과도 연결되며, 그 고독의 심연에서 삶의 본질적인 질문들을 탐색하게 한다.
겨울 숲은 인간적 고독과 자연 사이의 긴장을 확대하며 누구나 삶의 의미와 책임에 대해 사유하도록 한다.
내 발걸음은 이 고요한 숲을 더듬으며 마침내 나 자신과 마주한다.
지나온 길에 대한 회한이 스며든다.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더 따뜻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었을 텐데…
까치발 들고 보지 않아도 새 각오로 출발한 새해도 빤한 작심삼일로 마무리되며 벌써 1월의 끝자락에 서있다.
이대로 2월을 시작해도 될까? 평생을 그리 자책하면서 돌고 돌며 살아온 것 같다.
나는 진부한 60 평생을 살아오면서, 삶의 난관과 곤고함을 견뎌내며 별다른 진전 없이 살아 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신의 영역에는 언감생심, 내 몸 하나 추스르는 것도 제대로 못했지만 점점 사악해져 가는 세상에 한 점의 사악함이라도 더하지 않으려 노력했다면, 그런대로 봐 줄만 하지 않을까?
세상을 다스린답시고 자기 안에 내재된 폭력성을 짐승처럼 드러내서 요즘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자들보다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부끄러워할 줄 알고 낮게 드리운 하늘을 보면 안타까워할 줄 아는 인생이 더 나은 것이 아닐까?
인생은 오늘처럼 사유할 공간이 있고 되돌아볼 여유가 있다면, 조급해하거나 격렬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산책길은 공원 언덕배기에 있는 스포츠 파빌론에서 끝이 난다.
건물 옆 너른 광장에는 흰 눈이 여전히 수북하고, 크로스-컨트리 스키 자국이 듬성듬성 나 있다.
광장 끝 절벽 쪽에는 키 높이 만한 목책이 꽤 넓게 쳐져 있다. 이 목책 안에는 말 몇 필이 노닐곤 했는데, 오늘은 눈이 깊어서인지 보이지 않는다.
목장은 주변과 잘 어우러져 있어서 숲이 조금이라도 우거지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나도 이 공원을 수년동안 드나들었지만, 최근에서야 이 말들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었다.
주변과 잘 동화되어 있는 것은 비단 목장만이 아니다.
이곳은 캐나다 최초로 세워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승마 센터 CARD(Community Association for Riders with Disabilities)’이다.
승마와 승마프로그램을 통해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특히 어린 장애아의 삶을 개선하는 데 공헌한다고 한다.
큰 비용이 들겠지만 수많은 volunteer들의 무료봉사로 운영되는 곳이다.
나는 이곳이야 말로 아름다운 자연과, 자연의 한 자락인 사람과, 그 사람 안의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이 어떻게 동화되어 살아야 하는지를, 또 자연에서 점점 격리되어 가는 존재들이 어떻게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살아야 하는지를 자문하게 하는 장소라고 말하고 싶다.
“CARD is committed to fostering, cultivating and preserving a culture of 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in the communities we serve.
우리는 우리가 봉사하는 커뮤니티에서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의 문화를 구축하고 보존하며 그러한 활동을 (더욱) 융성시키는 데 헌신합니다”
산책 나온 발길을 돌리는데, 함박눈이 다시 내린다.
인간이 어떻게 자연과 사람과 동화되어 살아야 하는지를 좋은 예로 보여주는 G-Ross Lord 파크.
그 넓은 품 안에는 묵직하게 쌓인 눈처럼 침묵의 시간이 흐르겠지만, 오는 봄날에는 이 숲에서 밝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타고 가는 어린아이들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