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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아버지

by Jaeyoon Kim

193,000원.


한 정치인에게는 한 끼 식사조차 해결할 수 없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입니다.


하지만 막걸리 한 사발에 김치 한 보시기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에게는


며칠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는 큰돈입니다.


그리고 한 아버지에게는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길에서조차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한 짐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아이들에게 휠리스를 사주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일하는 아버지, 고 김주익 씨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이 193,000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193,000원. 인라인스케이트 세 켤레 값입니다.



35m 상공에서 100여 일도 혼자 꿋꿋하게 버텼지만


세 아이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아픈 마음을 숨기지 못한 아버지.


그 아버지를 대신해서 남겨진 아이들에게


인라인스케이트를 사준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도, 정치인도 아니구요. 그저 평범한, 한 일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유서 속에 그 휠리스 대목에 목이 멘 이분은요,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그리고 휠리스보다 덜 위험한 인라인스케이트를 사서


아버지를 잃은, 이 위험한 세상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건넸습니다.



2003년 늦가을. 대한민국의 노동 귀족들이 사는 모습입니다.



- 2003년 11월 18일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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