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동안에는 병원도 살짝 쉬어간다.
매일 오후 8시에 진행하는 고용량 스테로이드 주사 치료 외 다른 처치 및 검사는 없었다.
토요일엔 엄마와 아빠가 놀러 왔다.
엄마는 나랑 먹을 도시락을 싸왔다.
아빠는 남편을 데리고 근처 소갈비집으로 향한다.
"이럴 때일수록 호랭서방이 더 잘 먹어야 해.
나중에 보호자가 앓아눕는 경우가 허다하거든.
환자 돌본다고 자기 몸은 오히려 못 챙기는 거지."
마침 부쩍 핼쑥해진 남편이 걱정되던 찰나였다.
엄마, 아빠 센스 최고다!
일요일엔 남동생이 놀러 왔다.
그는 우리에게 싱싱한 사과와 엄마표 반찬을 잔뜩 전해주고 자긴 운동하러 간다며 급히 퇴장했다.
짜식, 그래도 누나 걱정돼서 한번 보러 왔구나?
2024년 10월 21일(월)
어제부로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가 끝났다.
드디어 링거에서 탈출했다.
주삿바늘아! 다신 보지 말자.
링거를 빼니 목욕을 할 수 있게 됐다.
입원하고 젖은 수건이나 물티슈로 몸을 닦았고
남편이 머리도 종종 감겨줬지만
정식 목욕은 일주일 만이었다.
몸에서 아주 지독한 냄새가 풍겼다.
헐레벌떡 샤워실로 간다.
병원 샤워실은 꽤 넓었고 성인남녀 둘은 거뜬히 앉을 수 있는 긴 의자가 놓여있었다.
휠체어에서 의자로 남편에게 안겨 이동한다.
도움받아 옷을 벗는다.
샤워기를 틀자 물줄기가 몸을 쓸어내린다.
아아, 행복하다! 너무 시원해!
그리웠던 삶의 일부를 되찾은 느낌이다.
내가 스쳐 지냈던 일상이 이토록 사치스러운 것이었구나.
열정적으로 씻고 돌아오니 간호사님이 약 봉투를 준다.
오늘부터 경구 스테로이드 치료 시작이다.
소론도정 60mg (5mg * 12개)
손에 올려진 12개의 스테로이드를 쳐다본다.
훨씬 고용량이었던 주사를 맞을 때는 오히려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더 실감 난다.
두드러기나 피부염으로 스테로이드 한 알을 먹을 때도 부작용이 걱정된다며 쫄았었는데...
손에 가득한 스테로이드를 보니 실소가 난다.
스테로이드는 강력한 항염효과의 약물이다.
다만 각종 부작용으로 악명이 높고
내성이 잘 생기며
리바운드 현상까지 있어
나처럼 고용량으로 처치받은 경우
테이퍼링(약물 의존도를 리바운드 없이 낮추기 위해 용량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방법)을 굉장히 신경 써야 한다고 한다.
부작용을 찾아보니 참 많기도 하다.
튼살과 타박상을 동반한 피부 연화, 고혈압, 혈당 상승, 백내장, 얼굴(문페이스)과 복부의 부기, 상처 치유력 악화, 뼈의 칼슘 상실(골다공증 초래), 배고픔, 체중 증가 등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외모에 치명적인 부작용들이 제법 눈에 띈다.
문페이스만은 걸리지 않기를...
지금도 얼굴은 둥글다고! 절대 싫어!
남편과 함께 낮잠을 자고 있던 찰나 J 교수님이 회신을 오셨다.
"컨디션은 괜찮으시죠?
내일까지 스테로이드 치료 경과 관찰하고 퇴원하실 거예요."
퇴...퇴원이요?
저 아직 걷지도 못하는데요.
이대로 퇴원해도 되는 건가요?
"네. 신경과 급성기 치료는 끝났어요.
그리고 체력적, 정신적으로 입원은 힘들잖아요.
다이아님이 임산부이시다 보니 집에서 생활하시면서 재활은 근처 병원에서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중증은 아니고 경과도 나쁘지 않고
아직 나이도 젊으시니 곧 괜찮아지실 거예요."
J 교수님은 바쁜 걸음으로 퇴장하신다.
남편과 나는 퇴원소식에 얼을 타고 있다.
초기에 치료계획 세울 때부터 일주일정도 입원할 거라고 하시긴 했었는데...
진짜 퇴원해도 되는 건가?
나 전혀 나아진 게 없는데?
교수님이 그러라니 그러면 되겠지?
혼란스러워하는 우리에게 맞은편 침상을 사용하는 보호자분이 말을 건다.
그녀는 거동이 불편한 딸을 간병하고 있는 어머니로 병원생활 베테랑이다.
"재활은 입원해서 하는 게 아무래도 좋아요.
집에선 잘 안되더라고요.
여기 재활과로 전과하면 좋긴 한데 잘 안 받아줘서...
그래도 J 교수님께 얘기는 한번 해보세요."
가끔 작은 선의에 큰 도움을 받는 그런 순간이 있다.
역시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다.
그녀의 조언에 힘입어 J 교수님께 재활과로 전과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약간 곤란해하는 눈치이다.
"재활의학과에 얘기는 한번 해 볼게요."
나중에 추측건대
신경과에서는 뇌질환을 많이 다루다 보니
재활이 필요한 환자들이 계속 생기지만
이곳 재활의학과의 풀은 한정적이다.
신경과에서는 매번 요청하고
재활의학과에서는 매번 거절하는
그런 관성이 있어 요청을 꺼리는 모양이다.
지금 이 상태로 퇴원하면 너무 막막할 것 같다.
받아주면 좋겠는데...
과연 나는 이곳에서 재활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