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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가, 제가 한번 내볼게요

by 다이아

나는 여의도 모 증권사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이다.


금융쟁이들이 그렇듯

퇴사는 자주 해봤어도

휴직은 못해봤고

병가? 당연히 내본 적 없었다.


2024년은 일하기엔 아주 럭키했다.

우선 좋은 팀장님과 팀원들을 만났다.

내가 도맡은 프로젝트가 모두 좋은 성과를 내고 있었다.


직장인으로서 기세등등할 때 아기까지 찾아왔다.

지난 5월 유산의 아픔이 있었기에 고맙게도 모두에게 축복을 받았다.

단축근무도 신청했다.


일과 가정을 모두 잡았다고 기뻐하던 찰나!

하루아침에 병상에 드러누웠다.


당연히 인수인계도 제대로도 못했다.

그럼에도 팀에서는

내 갑작스러운 퇴장을 너그럽게 이해해 줬고

어떤 팀원들은 야근까지 해가며 내 공백을 메워주었다.


팀에서 이해해 주었기에

병가 승인절차는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픈 건데 어쩌겠어.

아프다고 자를 거야?

팀에서 괜찮다는데 받아주겠지.


내가 현재 다니는 회사가 페이퍼 워크에 미친 곳이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병가에 대해 HR과 얘기하며 시련에 부딪힌다.

그들이 맞춰오라 한 기준은 참 세밀했다.


1. 3차 상급종합병원의 진단서를 받아오라.

E 대학병원은 2차 종합병원이다. (신생병원)

치료를 시작한 이상 전원은 쉽진 않다.

게다가 의료대란 때문에 3차 병원들은 예약조차 받아주지 않는다.

기적적으로 예약해서 진료를 받더라도 그 뒤에 재활은 어떻게 하나?


2. 진단서에는 임상적 추정이 아닌 최종진단이 들어가야 한다.

내 병은 아직 원인질환을 찾고 있는 중으로 당연히 임상적 추정 상태이다.

다른 환자들의 사례에서 최종진단까지 2년 이상 걸린 경우도 있었다.


3. 진단서에는 출근이 어려운 사유, 치료계획, 치료일정이 구체적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다행히 내 진단서에는 하지마비로 출퇴근이 어려워 입원 재활치료가 3개월 이상 필요하다고 명확히 기재되어 있었다.


1번, 2번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최악의 경우 퇴사할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든다.


팀장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감사하게도 팀장님이 총대를 메고 해결을 위해 뛰어주셨다.


우리 본부 내 보고는 물론 HR 팀, 본부 협의까지!

최종 승인까지 시간은 꽤 걸렸지만

어쨌든 큰 잡음 없이 매끄럽게 진행됐다.


그리고 입원한 지 3주도 넘은 시점인

2024년 11월 7일(목)

약 3개월간의 병가가 최종승인됐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당사자 혹은 애먼 팀원에게 떠넘기고 나몰라 하는 상사를 수도 없이 봤었기에 그저 팀장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번외] 남편의 휴직


하반신 마비로 인한 낙상고위험군

나는 보호자의 24시간 상주가 필요한 환자이다.

보호자가 상주 못하는 경우 간병인을 사용해야 한다.

간병인 사용도 못하는 경우 간호·간병통합병동으로 입원해야 한다


남편은

다른 사람 손에 나를 맡길 수 없고

힘들 때 곁에 있는 게 부부 아니냐며

휴직을 제출하기로 결심했다.


남편과 같은 케이스에선 일반휴직 혹은 가족돌봄휴직을 사용할 수 있었다.

가족돌봄휴직은 근속기간이 유지되어 승진, 퇴직금 산정, 연차휴가일수 가산에 일반휴직 대비 유리했다.


다만, 가족돌봄휴직을 쓰고 싶으면

가족 중 남편 본인만이 간병 가능함을 증명할 것

30일 이전에 신청할 것

상기 두 가지 기준을 맞춰오라는 HR의 요청에 일반휴직을 쓰기로 했다고 했다.


참 야속하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우리나라 근로 제도는 너무나도 사용자 친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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