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와 척수에 염증이 생기고 난 후
나에게 일어난 다양한 일들에 대해
꽤나 상세히 캘린더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는 나의 치료 경과 등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브런치에 글을 쓸 때도 많이 참고하고 있다.
다만 이 날은 내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관련해서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당연히...
잊고 싶었지만 잊지 못했다.
기록하지 않아 까먹은 정확한 날짜 빼고 사건의 모든 순간들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더러움 주의] 대변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2024년 11월의 어느 날
대변은 입원 환자에게 아주 중요한 행위이다.
감염 위험 등 때문인지 병동 간호사님들은 환자들의 대변 활동을 면밀히 살폈다.
"오늘 대변은 몇 번 보셨어요?"
못 봤어요...
나의 경우에는 하반신이 마비되며 대장의 능력이 함께 저하되었기 때문에 변비와 계속해서 사투했다.
나는 산화마그네슘이라는 변비약을 처방받아 매일 먹었고
간호사님들은 내가 대변을 잘 보고 있는지 지속 체크했다.
이 날 나는 오전 재활치료를 마치고 점심 식사를 마친 다음
약 3일 만에 화장실에서 큰일을 봤다.
오오! 아주 훌륭했다.
배가 아주 홀가분하다.
잠시 쉬다가 재활치료실로 내려간다.
14:00~14:30 운동치료 (광쌤)
이상하게 배가 꾸륵꾸륵하다.
변의가 느껴지진 않는다.
재활치료실 내에는 화장실이 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동선을 파악해 둔다.
여기서 잠시!
장애인 화장실 문의 구조를 알려주려고 한다.
바깥쪽 버튼을 누르면 : 문이 닫힌다.
안쪽 버튼을 누르면 : 문이 닫히고 + 잠긴다.
이 차이점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
처음의 우리는 대충대충 사용했었다.
바깥쪽에서 버튼을 누르고 들어가기도 했었고
안쪽에서 버튼을 누르고 나오기도 했었다.
무지란 참 무서운 것이다!
14:30~15:00 작업치료 (빈쌤)
요즘 빈쌤과는
10분 정도 팔 운동을 하고
5분 정도 발을 풀어준 다음
10분 정도 유연성 강화 훈련을 한다.
마지막 유연성 강화 훈련은 앉아서 상체를 굽히는 스트레칭 동작이 주를 이뤘다.
골반과 코어 쪽을 주로 쓰는 동작들을 지속한다.
배의 꾸륵꾸륵이 심해진다.
곧 수업이 끝날테니 조금 참아본다.
배가 꾸륵꾸륵꾸르르륵 더 난리다.
급격하게 변의가 느껴진다.
배가 꾸륵하며 방귀가 새어 나온다.
이... 이젠 안 되겠어...!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휠체어에 탄다.
구수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안간힘을 다해 괄약근을 쪼여본다.
남편이 재활치료실 내 화장실로 향하는 걸 말리고
급히 바깥쪽 화장실로 노선을 튼다.
혹시나 실수가 있을 경우 치료실의 사람들에게 너무 쪽팔릴 것 같았다.
"잠시만 지나갈게요!"
남편이 재활치료실 복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본다.
시선을 무시하며 항문을 쪼인다.
간신히 도착한 화장실.
남편이 나를 화장실로 내려준다.
바지는 내가 급히 벗는다.
설사가 나온다.
변비가 해결되니 산화마그네슘으로 묽어진 변이
한 번에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자... 자기는 조금 멀리 가있어..."
남편이 휠체어를 뒤로 끌며 나와 조금 떨어진다.
아, 오늘도 참 치욕스럽구나.
급한 일을 마치고 벗겨져있는 하의를 올리려는 찰나 갈색의 무언가가 선명하다.
나는 왜 하필 흰 팬티를 입었을까!
색깔의 대비가 두드러진다.
오 마이갓...
이 병은 대체 절 어디까지 추락시키는 겁니까?
내 절망하는 표정을 본 남편은 빠르게 밖으로 향한다.
그가 뛰어나가며 바깥쪽 버튼을 눌러 문을 닫는다.
문이 잠기지 않고 닫힌다.
생각해 보면 남편이 얼레벌레 바깥쪽 버튼을 누르는 게 위험했지만 신의 한 수였다.
문이 잠겼다면 남편은 들어오지 못한다.
나는 하반신 마비로 변기에서 꿈쩍하지 못한다.
장애인 화장실은 휠체어가 들어와야 해서 매우 넓다.
내가 문을 열어줄 수가 없다.
게다가 휠체어는 내가 남편에게 저기 멀리 가있어달라 지시했기에 나와 꽤 떨어져 있었다.
혼자 트랜스퍼를 할 수도 없었다.
남편이 바지와 팬티를 챙기러 간 찰나
처참함에 눈물을 흘리며 뒤처리를 한다.
더러운 팬티를 휴지에 돌돌 말아 버린다.
절망 속에서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그 사이에 아무도 화장실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약 15분을 눈물 흘리며 기다렸다.
남편이 가져다준 옷을 입는다.
뒤처리를 마친다.
어딘가에 숨어서 쉬고 싶다.
남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내게 말을 건다.
"나머지 재활치료 할 거지?"
남편의 등쌀에 작업치료실로 돌아간다.
요즘은 오후 기구 재활시간에 스텐딩 베드를 사용한다.
기구에 매달리니 상념에 빠진다.
괄약근 기능 장애
인정했지만, 인정하지 못했나 보다.
잠재웠던 우울증이 다시 튀어나온다.
내 뒤로 치료사님과 치매어르신이 보행기를 타고 지나간다.
나도 차라리 의식이 없었으면 오히려 좋았을까?
의식이 명료하니 더 괴롭다.
어딘가로 콱 뛰어내려 죽고 싶은 하루다.
남편이 나를 살펴보며 말을 건다.
"괜찮아?"
대답할 멘탈이 없다.
그저 힘 없이 허허 웃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