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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결과: 상세불명의 미로속으로

by 다이아

2024년 11월 7일(목)


우리가 손꼽아 기다리던

항체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오후 4시경 신경과 협진이 잡혔다.

휠체어를 타고 진료실로 내려간다.

환자가 어마무시하게 많다.

30분 가량 기다려 간신히 입장한다.


오랜만에 보는 J 교수님.

응? 교수님의 머리가 엄청 떡져있다.

눈가도 퀭하다.


"요즘 너무 바쁘네요.

밖에 외래 환자분들 기다리는 것 보셨죠?

환자가 너무 많아서 잠깐만 봐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항체검사는...

아쿠아포린 4 음성

모그 음성

올리고클로날밴드 음성이네요.


주요 항체에서 양성이 나와야

시신경척수염이나 다발성경화증으로 진단 내려드릴 수 있어요.


이 상황에선 재발을 하는지 여부까지 관찰해봐야

가닥이 잡힐 것 같아요."


그녀는 순식간에 지식을 쏟아냈고

남편과 나는 정신없이 필기했다.


너무 지쳐 보이는 교수님과

바깥의 수많은 환자들에 대한 압력에

우리는 쫓겨나듯 진료실 밖으로 나온다.




추후 찾아본 결과


1회 차 척수염으로(재발없이)

시신경척수염을 진단받기 위해서는

아쿠아포린 4 혹은 모그 항체가 양성이 나와야 하며


다발성경화증을 진단받기 위해서는 올리고클로날밴드가 양성이어야 한다고 한다.


나처럼 모든 항체가 음성인 경우

재발을 할지 안 할지 알 수 없는

상세불명의 뇌척수염으로 진단된다고 한다.


그리고 시신경척수염다발성경화증

국가에서 인정하는 희귀병이자 난치병이라

이를 진단받으면 병원비의 대부분을 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해 주는 산정특례를 적용받을 수 있다.

물론, 상세불명의 뇌척수염은 이런 특례에서 예외이다.


약간 아쉬운 기분이지만 마음을 다잡는다.

국가공인 희귀병&난치병 환자가 된다는 게 좋은 건 아니잖아?


뇌와 척수의 염증들은 저 질환들과 다르니 재발을 안 할 수도 있는 거잖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최대한 긍정적으로!




내가 긍정적이기 위해 마음먹은 것과 별개로...

원인질환이 명확하게 나오지 않자 주변 가족들이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특히 아빠는 매번 병문안을 올 때마다 다른 병원을 가보라며 재촉했다.


"혹시 오진이 있을 수도 있잖아.

여기 주치의만 믿어도 되는 거야?

더 큰 병원도 가보는 게 어때?"


그럴 때마다 마음 한편이 부글부글하다.

회사랑도 비슷한 이유로 협의하느라 진을 뺐는데...

※ 18화 병가, 제가 한번 내 볼게요 편 참고


치료를 이미 시작 한 이상 전원이 쉬운 일은 아니고

병원 예약도 바늘구멍 통과하기라고

재차 설명한다.


게다가 내 병엔

테로이드 및 면역억제 치료가 사실상 전부인데

임신 상태라 면역치료를 못하는게

다른 병원을 간다고 특별히 달라질 것도 없을테니

출산 후에 다른 병원을 찾아서 가볼 예정이다.

재차재차 설명한다.


하지만 아무리 설명해도 도돌이표다.

화가 조금씩 밀려온다.


엄마가 내 표정을 보고 아빠의 대화를 슬쩍 끊는다.

남편이 나에게 눈빛을 보낸다.

나도 어렵사리 흥분을 가라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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