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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장아장, 걸음마 시작

by 다이아

2024년 11월 14일(목) [1]


나는 여전히 E 대학병원에서 재활 중이다.

아쉽게도 제대로 걷지는 못하지만

보행기를 잡고 몇 발자국은 걸을 수 있게 됐다.




잠시 과거를 회상해 본다.

내 첫걸음마.

아니, 첫걸음마는 아기때 했겠지.

11월 5일(화), 나는 두 번째 걸음마를 시작했다.


나는 언제나처럼 앉았다 일어서기와 서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늘리기 위한 운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수업 말미에 광쌤이 갑자기 바퀴가 달린 보행기를 가져왔다.


"슬슬 다음 주엔 걸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늘은 일단 예습! 시도만 해보시죠."


일단 스스로 자리에 일어선다.

손으로 보행기를 잡는다.

광쌤이 내 허리춤을 잡아준다.


"저랑 같이하면 안 다치는 거 이제 아시죠?

일단 그냥 한번 해보세요!"


다리를 어떻게 뻗었었지?

이렇게였나?

허벅지 다리근육을 앞으로 뻥 차 본다.

한 발이 앞으로 나간다.


"오오! 좋아요 다른 발도 해보세요!"


다른 다리를 앞으로 뻥 차 보려고 노력한다.

잘 안된다.


"할 수 있어요!"


그의 격려에 힘입어 반대쪽 발을 내밀어본다.

발이 내 명령을 수행하는데 한참이 걸린다.

간신히 한발 더 앞으로 나간다.


헉헉...

움직인 건 하반신인데 팔과 승모근이 잔뜩 화가 났다.


"오! 괜찮은데요?

좀 쉬다가 다시 해보시죠."


광쌤의 도움으로 베드에 앉는다.

같은 동작을 다시 무한 반복한다.


내가 상반신으로 걷는 건지

하반신으로 걷는 건지

애매하긴 하지만..

어쨌든 걷는 시늉을 했다!

아! 이제 걷는 척은 할 수 있구나!

아아!! 행복하다!




그 이후 매일매일 꾸준하게

보행기로 걷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두 발자국이 네 발자국이 되고

발자국이 여덟 발자국이 됐다.

한주가 지나니 열 발자국 정도는 걸을 수 있게 됐다.


물론, 혼자는 못한다.

쌤이 허리춤을 잡아줘야 한다.

아직 갈길이 멀다.


그런데 또! 내일 퇴원하란다.

대학병원의 특성인지 이 병원만의 원칙인지

한 달 이상은 입원할 수 없다고 한다.

당황하던 찰나 추가 재활을 위한 재입원 일정이 곧바로 잡혔다.


11월 15일(금) 퇴원하고

11월 18일(월) 재입원해서

11월 19일(화) 부터 다시 재활을 시작하기로 한다.


투병하며 계속 느낀다.

병원은 생산자이지만 갑이다.

환자는 소비자이지만 을이다.

뭐... 을이면 하라는 대로 해야지.


남편과 나는 허둥지둥 퇴원 준비를 시작한다.


[남편의 체크리스트]

동사무소에서 휠체어 대여하기

휠체어 동선 점검 (동네/집)

보행기 동선 점검 (집)

집 청소 및 정돈

밑반찬 해두기


[나의 체크리스트]

집에서 먹고 싶은 음식 재료 시켜두기

보험 청구 서류 알아보기


업무분장이 좀 그런가?

남편이 할 일이 참 많네.




엄마가 퇴원준비를 도와준다며 11시쯤 병원에 왔다.


덕분에 남편이 집에 일찍 가서 체크리스트를 해결하고

내일 점심즈음 엄마와 교대하여 퇴원 수속을 진행하기로 했다.


남편은 엄마가 도착하자마자 집으로 튀어간다.


두근두근.

집에 간다고 하니 설렘이 밀려온다.


물론 걱정도 함께 몰려온다.

과연 이 상태로 집에서 생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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