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후삼국 사람과 친구하기] 도선

새로운 시대를 설계한 예언자

by cm

천년을 이어온 신라의 기운이 다해가던 9세기말, 세상은 어지러웠습니다. 여기저기서 반란이 일어나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습니다. 사람들은 이 지옥 같은 현실을 끝내줄 새로운 세상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때, 산천의 형세를 살피며 미래를 예언하는 신비로운 스승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오늘의 친구인 도선(道詵)입니다.


도선은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일찍이 승려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골방에 앉아 경전만 읽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산의 모양과 물의 흐름을 관찰했습니다. 그는 자연환경을 관찰하면서 '비보(裨補)'라는 독특한 사상을 내놓았습니다. 땅의 기운이 부족한 곳엔 탑을 세우거나 숲을 조성해 기운을 보충하면 쇠퇴해 가는 국운도 다시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였죠. 이 비보가 바로 한국 풍수지리설의 시작이 되는 사상이었습니다.


도선에 대해서는 풍수지리만큼 유명한 것이 바로 고려 태조, 왕건과의 인연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도선은 송악(개성)을 지나다가 왕건의 아버지 왕륭을 만나 "이곳에 집을 지으면 장차 삼국을 통일할 성군이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합니다. 역사학자 중에서는 이 설화를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운 뒤, 자신의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도선의 권위를 빌려온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당시 왕건은 주군을 죽이고 왕이 된 인물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늘이 선택한 적임자라는 증명이 필요했죠. 이때 도선이라는 거물급 인사가 예언한 준비된 왕이라는 서사는 아주 강력한 정치적 무기가 되었습니다. 왕건은 도선의 풍수설을 독점함으로써 자신만이 신라를 대체할 유일한 대안임을 선포했습니다.


왕건 이후에도 고려 왕실은 도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그의 풍수설을 국가 기밀처럼 관리하며 독점하려 했습니다. 왕건이 남긴 <훈요 10조>에서도 도선이 정하지 않은 곳에 함부로 사찰을 짓지 말라고 엄명을 내릴 정도였죠. 도선은 고려라는 국가의 탄생과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상징이 된 것입니다. 결국 도선은 살아서는 산천을 누비는 구도자였지만 죽어서는 고려 왕조의 기틀을 지탱하는 거대한 정신적 기둥이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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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풍수지리설은 흔히 미신이라고 치부하곤 합니다. 하지만 당시 도선이 읽은 것은 지형지물의 모양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땅의 기운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읽었습니다. 낡은 신라의 질서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직감했고, 새로운 시대가 어디에서 피어날지를 정확히 짚어냈죠.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 마음의 기운도 쇠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도선 같은 친구가 곁에 있다면 이렇게 말해줄 것 같습니다. "지금 네 마음의 지형이 조금 거칠더라도 낙담하지 마라. 부족한 곳에 정성을 들여 비보한다면 그곳이 바로 네 삶의 전성기가 시작될 명당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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