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후삼국 사람과 친구하기] 신라 성덕왕

신라의 전성기를 설계한 고독한 정치가

by cm

설총, 표훈, 도선.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3명의 지식인들과 지난주까지 친해져 보았습니다. 이번 주부터는 통일신라의 전성기, 중흥, 최후의 불꽃을 이끈 3명의 왕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3명의 왕 중에서 오늘 우리가 만날 친구는 신라 중대의 전성기를 완성한 완벽주의자, 성덕왕(聖德王)입니다.


통일 신라의 역사에서 가장 평화롭고 풍요로웠던 시기를 꼽으라면 단연 성덕왕의 시대를 말할 것입니다. 성덕왕의 이름은 우리에게 '성덕대왕 신종(에밀레종)'으로 더 익숙합니다. 종은 그의 아들인 경덕왕 시대에 만들기 시작해 손자인 혜공왕 때 완성되었지만 종의 이름에 '성덕'이 붙은 이유는 그만큼 성덕왕의 시대가 후대 사람들에게 황금기로 기억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찬란한 황금기의 이면에는 왕권을 지키기 위해 사랑과 가족까지도 정치적 계산대에 올려야 했던 성덕왕의 고독한 투쟁이 숨어 있습니다.


성덕왕의 정치는 시작부터 결단의 연속이었습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그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당시 막강한 세력을 가졌던 외척 세력을 견제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이 바로 성정왕후의 출궁입니다. 왕후를 출궁시킨 것은 부부 사이가 나빠서만이 아니었습니다. 왕후의 가문인 김원태 세력이 왕권을 위협할 만큼 커지자 성덕왕은 조강지처를 대궐 밖으로 내보내는 비정한 선택을 했죠.


그의 고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왕후가 낳은 어린 세자가 의문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뒤이어 맞이한 소덕왕후 역시 아들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요절했습니다. 이후 성덕왕은 죽을 때까지 13년 동안이나 다시는 왕비를 들이지 않고 홀로 지냈습니다. 이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또 다른 외척 세력이 등장해 정치를 어지럽히는 것을 원천 봉쇄하려는 철저한 정치적 계산이 깔린 고독한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성덕대왕 신종.jpg 성덕대왕 신종

집안 단속을 마친 성덕왕은 시선을 밖으로 돌려 신라의 위상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당시 국제 정세는 발해의 성장으로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성덕왕은 당나라와 강력한 군사 동맹을 맺는 한편, 이웃 나라 일본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선언을 합니다. 바로 신라를 '왕성국(王城國)'이라 칭한 것입니다. 왕성국이란 "왕이 거처하는 성이 있는 나라", 즉 당나라로부터 정식으로 인정받은 문명국이라는 자부심이 담긴 표현이었습니다.


왕성국 선언은 신라가 일본을 자신보다 아래에 두거나 최소한 대등한 위치에서 다루려 했던 고도의 외교적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당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문명국이다"라는 선포는 당시 신라가 가졌던 국제적인 자신감의 표현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전성기를 구가한 왕이라면 모든 것이 순탄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덕왕의 삶은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평화로운 시대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뼈를 깎는 절제와 고독한 결단 위에 세워진다는 것을요. 성공의 정점에서 오히려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며 외로운 13년을 홀로 버텨낸 성덕왕. 그가 닦아놓은 단단한 평화 덕분에 신라 백성들은 굶주림을 잊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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