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쓴소리를 건네는 친구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장미 같은 유혹을 만납니다. 나를 치켜세워주는 달콤한 칭찬, 당장의 편안함, 화려한 겉모습들. 그런 유혹에 빠져서 내가 잘못된 길로 갈 때, 기꺼이 쓴소리를 해줄 수 있는 친구가 여러분은 있으신가요?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계신가요? 오늘의 친구는 왕에게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강인한 심지를 가진 친구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날 친구는 신라의 천재 학자이자 왕의 마음을 움직인 쓴소리의 대가, 설총(薛聰)입니다.
새로운 통일 왕국 신라가 기틀을 잡아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강력한 왕권을 휘두르던 신문왕은 어느 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자신의 조언자였던 설총을 불렀습니다. "나를 즐겁게 할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들려주게." 왕의 가벼운 요청에 설총은 역사상 가장 날카로운 스토리로 응답합니다. 설총은 우리에게 해골물 일화로 유명한 원효대사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파계와 결혼이라는 파격적인 행동으로 민초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면 아들 설총은 정교한 학문과 논리로 국가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그가 신문왕에게 들려준 화왕계(花王戒)는 그 지혜의 정점이었습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인 화왕(꽃의 왕) 모란은 화려한 정원에서 수많은 꽃의 아첨을 받으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향기롭고 아름다운 미녀 장미가 나타나 그를 유혹합니다. "저를 곁에 두시면 달콤한 기쁨을 드리겠습니다." 화왕이 그 미모에 정신을 못 차릴 때, 거친 옷을 입고 허리가 굽은 노인 백두옹(할미꽃)이 나타납니다. 그는 길가에서 자라는 흔한 꽃이었는데 왕에게 뼈아픈 충고를 던지죠.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직한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습니다. 대왕께서는 장미의 미소에 취해 나라를 망치시겠습니까?"
이 얘기를 듣고 고민하던 신문왕에게 설총은 쐐기를 박습니다. "대개 임금된 이들은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하고 정직한 자를 멀리하기 마련입니다." 이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란 신문왕은 무릎을 쳤습니다. "그대의 이야기는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게 주는 엄중한 경계로다!" 왕은 이 이야기를 글로 남겨 후세 왕들의 거울로 삼게 했습니다. 단순히 지루한 훈계가 아니라 꽃이라는 비유를 통해 스스로 깨닫게 만든 설총의 소통 방식이 빛난 순간이었습니다.
설총의 업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우리말을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적는 이두(吏讀)를 체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한자를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전하지 못하던 백성들에게 우리말의 어순에 맞춰 글을 쓸 수 있는 도구를 쥐여준 것입니다. 이는 훗날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전까지 우리 민족의 언어생활을 지탱해 온 거대한 뿌리가 되었습니다.
천년의 세월이 흘러 그는 해동 18현의 한 사람으로 문묘에 모셔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화려한 사당 속에 박제된 성인보다 오늘날 우리에게 "지금 당신의 곁에는 누가 있느냐"라고 묻는 다정한 지식인 친구로 기억되길 바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