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후삼국 사람과 친구하기] 신라 신문왕

칼날 위에 평화를 세운 철혈 군주

by cm

2주 전, [삼국시대 사람과 친구하기]를 완결했습니다. 사실 해당 브런치북에 발해 인물이 들어가기도 해서 다음 시리즈를 고려로 잡을까 고민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제가 잘하는 걸 써야 좋은 글이 나오겠다는 생각에 [통일신라, 후삼국 사람과 친구하기]를 다음 시리즈로 가지고 왔습니다. 처음으로 친해질 친구는 누구일까요? 오늘 우리가 만날 친구는 혼란스러운 전후 복구 시기를 지나 통일 신라라는 국가의 완벽한 설계도를 그리고 실행에 옮긴 강단 있는 리더 신문왕입니다.


삼국 통일이라는 거대한 과업을 완수한 문무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신라 31대 신문왕(神文王). 그는 아버지로부터 통합된 영토를 물려받았지만, 그 내부는 여전히 전쟁의 상흔과 권력 다툼으로 어지러운 상태였습니다. 신문왕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마주한 사건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장인이자 최고 권력자였던 김흠돌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죠.


전쟁이 끝나자마자 불어닥친 피바람 앞에서 신문왕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장인을 포함한 반란 세력을 가차 없이 숙청하며 왕권에 도전하는 자는 누구도 용서치 않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이는 권력을 왕이 오롯이 독점하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전쟁 직후 흩어진 민심을 하나로 모으고 강력한 국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필요악과 같은 결단이었습니다.


그는 제도 개혁에도 거침이 없었습니다. 그는 국립대학인 국학을 세워 인재를 길러냈고,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나누어 효율적인 지방 통치 시스템을 완성했습니다. 또한 귀족들의 경제적 기반이었던 녹읍을 폐지하고 나라에서 관리하는 관료전을 지급했습니다. 이 토지제도의 변화는 귀족들의 힘을 빼고 백성들을 직접 다스리는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국가의 헌법과 행정 시스템을 통째로 갈아엎은 대대적인 혁신가였던 셈입니다.


그리고 신문왕은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을 신라의 중앙 군대인 9서당에 고루 배치했습니다. 고구려 유민들에게는 고구려의 상징인 황색 옷깃을, 백제 유민들에게는 백색 옷깃을 달아주어 각자의 정체성을 존중하면서도 하나의 군대로 묶어냈습니다. 신문왕의 통합은 무력으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진정한 의미의 민족 통합이었습니다.


신문왕과 관련해서는 흥미로운 설화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만파식적(萬波息笛) 설화입니다. 만파식적은 동해의 용이 된 아버지 문무왕과 하늘의 신이 된 김유신이 힘을 합쳐 보냈다는 신비한 피리였습니다. 이 피리는 불기만 하면 적군이 물러가고 병이 나으며 가뭄에 비가 내렸다고 전해집니다. 역사학자들은 이 설화를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신문왕이 통일된 나라의 혼란을 잠재우고 '이제는 평화의 시대가 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선포한 고도의 정치적 홍보(PR)로 해석합니다.


신문왕은 장인마저 베어야 했던 냉철한 결단력으로 천년 왕국 신라의 가장 찬란한 전성기를 준비했습니다. 냉혹해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 뜨겁게 조국의 안정을 갈망했던 그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책임감 있는 리더의 무게를 느낍니다. 통일 신라라는 거대한 드라마를 연 신문왕. 오늘 그와 친해지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