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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밥은 먹고 다닙니다.

이상과 현실의 갈림길에서

by cm



지난 3월, ‘사학과 대학원생은 굶고 다니나요?’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으로 시작했던 브런치북의 마지막 글을 올리게 됩니다. 브런치북의 구성이 30편에서 마무리되기도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소재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 참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제 대학원 생활의 밑천이 이 정도였을지도 모르죠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5개월간 꾸준히 글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부족한 글을 찾아와 읽어주신 독자분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길에 차이는 대학원생 한 명의 기록에 귀 기울여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전합니다.


인문대, 그중에서도 유독 낯선 사학과 대학원생의 삶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한 줄로 요약됩니다. 우리는 모두 ‘별을 향해 달려가는 청춘들’이라는 것. 나이가 스물이건 마흔이건, 머리가 희끗한 선생님이건 풋내기 신입생이건, 사료 한 줄에 가슴이 뛰고 내가 쓴 논문을 보면서 걱정과 설렘을 느끼는 그 열정만큼은 모두가 청춘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별을 향해 달려가는 이 길은 생각보다 든든한 신발과 두둑한 주머니를 필요로 합니다. 누군가의 꾸준한 지원과 응원 없이는 자기 한 몸 건사하며 공부를 이어가기가 버거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생게의 벽에 막혀 수많은 대학원생들이 “여기까지인가 보다” 되뇌며 현실이라는 이름의 벽 앞에서 걸음을 멈추곤 합니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가 형편없는 연구자라는 자괴감에 그만두기도 하죠. 그들에게는 두둑한 지원보다는 가시밭길을 걸어갈 수 있는 든든한 신발이 되어줄 응원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학계를 떠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나 마음 아픈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저 역시 그 선택의 기로를 향해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매일같이 박사 논문을 붙들고 씨름하면서도, 문득문득 ‘이 다음은?’이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사학이라는 고고한 이상과 생계라는 지독한 현실의 갈림길 앞에서 저는 불안정한 강사의 길과 박물관 학예 공무원의 길, 두 갈래를 놓고 서성이고 있습니다.


어느 길을 택하든 녹록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압니다. 어쩌면 이 글을 마무리하고 난 뒤에도 한참을 방황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럼에도 저는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또다시 책상에 앉아 꾸역꾸역 논문을 쓰며 하루를 살아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으로 지난 5개월간의 긴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저 자신과 이 길을 걷는 모든 분들, 저희의 길을 응원해 주시는 여러분께 건네고 싶은 마지막 얘기였습니다. 그동안 함께해 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저희는 어쨌든 밥은 먹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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