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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과 대학원생이 만난 사람들

유사 사학, 그 위험함이란

by cm

오늘은 살짝 민감한 얘기를 해볼까합니다. 사학과 대학원생이 만나는 여러 사람들 중에는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제가 사학과 대학원을 다닌다고 하면 눈을 반짝이곤 합니다. 그런데 그런 반짝임이 다른 의도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인지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학과 대학원생으로 살다 보면, 주변에서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분들을 생각보다 자주 만나게 됩니다. 대개는 책이나 전시, 영화를 통해 역사를 접하고 더 깊이 알고 싶어 하는 분들이라 “어떤 책을 먼저 읽으면 좋을까요?”, “이런 시대의 이야기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같은 건강한 질문을 하십니다. 그런 분들과는 이야기꽃도 피우고, 저 역시 다시 공부하게 돼서 즐겁기 마련이죠.


그런데 가끔 ‘위험한’ 만남도 있습니다. 바로 유사 사학, 특히 <환단고기>를 신봉하는 분들과 마주치는 순간입니다. <환단고기>는 한국의 역사가 기원전 8000년에서 시작되고, 우리 조상이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을 지배했다고 주장하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들이 맹신적인 민족주의, 이른바 ‘국뽕’과 섞이면서 소위 ‘환빠’라는 사람들이 생겨났죠. 문제는, 환빠들은 자신들의 신념만을 고집하는 수준을 넘어서, 대학에서 정통 사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나 교수들까지 ‘식민사학’의 추종자라고 공격한다는 점입니다. 저 역시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원을 다니면서 자주 다녔던 독서모임이 있습니다. 어느 날 독서모임을 나가서 책에 대한 토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 책이 유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였기에 저는 제 전공 얘기를 조금 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오신 패널 한 분이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게 느껴졌죠. 제 얘기가 끝나니 그 분이 다짜고짜 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cm님은 지금 공부하는게 다 진짜라고 생각하시나요?"


그 멘트를 듣는 순간 싸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습니다. 갑자기 '진짜'타령은 왜 하는걸까? 하는 생각이 저를 뒤덮었죠. 그러더니 그 분이 진지하게 "한국의 진짜 역사는 cm님이 말씀하시는게 아니에요!"라고 얘기를 했고, 그 뒤에 수메르가 환국의 아래 국가인 수밀아국이니, 환인, 환웅이 왕의 칭호이니 하는 얘기를 늘어놓았습니다. 굉장히 당황스러웠지만 제가 독서모임의 사회자였기에 저는 답을 하긴 했습니다.


"어… 그게 말이죠. 학계에서는 보통 <환단고기>를 위서로 보고 있어요. 글자 한 자가 맞거나, 우연히 모양이 겹치는걸 확대하고 있고, 다른 역사서랑 교차검증도 안되거든요."


그러자 그 패널 분이 저보고 식민사학을 오래 배워서 그렇다고 얘기를 하더군요. 그렇게 저는 민족의 역사를 팔아먹은 사대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서른 살 남짓한 제가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져 온 거대한 '식민사학 카르텔'의 일원이 된 것이죠. 굉장히 불쾌했지만 다른 분들도 있었기에 저는 그 얘기는 모임이 끝나고 카페에서 하자면서 다음 주제로 넘어갔습니다. 물론 모임이 끝나고 저는 집으로 가버렸고, 운영진들에게 얘기해서 그 사람을 퇴출시켰죠. <한단고기>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남의 전공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유사 사학의 진짜 위험함은, 단순히 잘못된 정보를 믿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검증된 연구자와 학계 전체를 근거 없이 매도하고, 공개적으로 공격하며, 가짜 정보가 대중적으로 퍼져 사회적 갈등을 조장한다는 데 있습니다. 누구나 역사를 자유롭게 해석할 자유는 있지만,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진실’처럼 믿고 남을 공격하려 드는 태도에는 단호히 선을 그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학도로 산다는 건, 가끔 이런 불편한 공격과 오해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나만의 학문 기준을 지켜나가는 것이 사학도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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