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나게 하는 건 결국 나 자신
오늘은 번아웃에 대해서 얘기해볼까합니다. 사회에 나가면 번아웃에 빠진 분들을 꽤 많이 봅니다. 정말 열심히 다녀왔기 때문에 번아웃에 빠지는 것이겠죠. 사학과 대학원생들 역시 밤잠을 설치면 발표, 토론을 하다보면 번아웃이 올 때가 있습니다. 다만 그 시기가 조금 빨리 찾아온답니다. 오늘은 사학과 대학원생들의 번아웃에 대해서 적어보겠습니다.
사학과 대학원에 들어오면 누구나 한 번쯤은 번아웃을 겪게 됩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이 정말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는 깊은 회의에 잠기는 순간이 있죠.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하게 번아웃을 느끼는 두 시기가 있습니다. 바로 석사 1학기 첫 발표, 그리고 석사논문 주제가 엎어졌을 때입니다.
대학원을 가자마자 번아웃이 온다고?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게 사학과 대학원입니다. 대학원생이 되고 처음 발표를 준비할 때의 긴장과 걱정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모두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만 사실 막 학부를 벗어나서 대학원 수업을 한 달쯤 들은 학생이 제대로 된 발표를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관점이나 연구 방법, 자료 해석 등에 대해 토론에서 거침없이 비판을 받기 마련입니다.
대학원까지 진학할 정도면 그 전공에 애착이 있고, 나름 공부도 좀 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이런 무자비한 난타는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히곤 합니다. 많은 친구들이 바로 이 순간 번아웃을 겪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라는 깨달음이 무겁게 내려앉죠. 하지만 이 감정을 어떻게, 얼마나 빨리 털어내느냐가 이후 대학원 생활을 마주하는 자세를 결정짓습니다. 여기서 다시 일어서서 공부를 한다면 연구자의 첫 걸음을 떼게 되기 때문이죠.
두 번째 번아웃의 파도는 석사논문 주제가 무산될 때 찾아옵니다. 석사 생활을 1년 반쯤 하면서 열심히 공부해서 '이제 대학원생 티는 내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석사논문 주제를 잡고 연구계획서를 쓰기 시작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도교수님의 한마디면 그간 쏟아부은 모든 열정과 노력이 단숨에 무너집니다. 아무리 본인이 열심히 준비해도 지도교수님이 “아니다”라고 하면 그걸로 끝이거든요. 연구계획서, 심지어 논문 초고까지 써놓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공력과 열정이 무력하게 좌절될 때, 많은 학생들이 여기서 번아웃에 빠지고 심지어 포기하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빠졌을 때, 선후배들이 곁에서 도와주거나 위로를 건네준다면 잠시 기운을 차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누구도 나 대신 일어서 줄 수 없다는 걸 결국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일어선 사람들은 조금은 느리지만 결국 석사를 취득하고 자신이 하고싶었던 다음 단계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저 역시 후배들 중에 주제가 몇 번이나 좌절된 친구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주제를 찾아 한 줄 한 줄 석사논문을 지금도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 명은 의욕을 보이다가 끝내 자신의 새로운 길을 찾지 못하고 멈춰 서버렸습니다. 아무리 곁에서 “할 수 있다”고 응원을 해줘도 결국 본인이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서, 또다시 길을 찾지 않는다면 그 친구에겐 거기가 사학 공부의 종착점일겁니다. 그런 모습을 한 걸음 떨어져서 보고 있는 저도 그 친구가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사학도의 번아웃은 ‘내가 생각했던 나’와 ‘현실의 나’ 사이의 괴리에서 시작됩니다. 그래도 '내가 이정도까진 되지 않을까?'라는 혹시나 하는 희망이 바스러져 버리면서 번아웃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학생들은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서 언젠가 자기만의 새로운 길을 걸어갑니다. 어쩌면 이 번아웃조차도 한 번은 넘어져봐야 하는 대학원생의 성장통일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