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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언타이 Mar 08. 2025

책 <모순>(양귀자) 리뷰/감상문

불행을 확신할 수 없는 고난과 행복을 약속할 수 없는 평온의 아이러니.

※ 스포일러 있음.


1998년도에 양귀자가 세상에 공개한 <모순>은 그 경이로운 재미로 인해 보는 이들에게 무척이나 빠르게 읽히는 문학이다. 몇 년 전 이를 독서한 뒤 '세상에, 이렇게 흥미로운 국문 소설이 있다니!'라고 감탄한 기억이 머리에 깊숙이 박혀있어, 그 각인의 구체적인 이유들을 줄곧 분석해 왔다.


글의 형태를 띤 어떤 이야기가 흡인력을 지니기 위해선 그 설정들과 문장들이 반드시 매력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러한 판단에 따라 <모순>을 생각해 보면, 이 소설은 상당히 작위적이면서 기묘한 설정들과, 아찔할 만큼 정확하고도 생생한 문장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독창적인 감동을 선사하는 탁월한 작품이라고 믿는다. 다음의 기록은, 이러한 확신의 근거에 대한 것이다.


1) 낭만과 안정의 딜레마, 불행을 확신할 수 없는 고난과 행복을 약속할 수 없는 평온의 아이러니, 처절한 헌신이 요구되는 자의 삶과 이를 절대로 요구받을 수 없는 인생의 컨트라스트.

> 주인공 안진진 곁을 맴도는 두 남자를 MBTI로 분류하면 아마 김장우는 INFP, 나영규는 ESTJ 일 것이다. 그러니까 공통점이라고는 XY 염색체를 지닌 게 전부라 느껴질 정도로, 둘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스스로를 포장하도록 만드는 낭만을 품은 김장우와의 사이와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안정이 담긴 나영규와의 관계 중 반드시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진진의 딜레마는, 자연스레 자신의 엄마와 이모가 지나온 날들에 스며든 아이러니를 초대한다. 고난을 동반자 삼아 하루하루를 견뎌내나 어쩐지 불행해 보이지 않는 엄마와, 평온이 넘치는 나날을 누리지만 왠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 이모가 일란성쌍둥이라는 사실은, 그녀가 처한 상황과 선명하게 겹쳐짐과 동시에 이 소설의 테마인 컨트라스트를 분명하게 상징한다.


2) 앞선 세대의 선택할 수 없던 분기점을 간접 체험한 자가 자신이 결정해야만 하는 양 갈림길 앞에서 어떠한 인생을 감내할지를 묵묵하고도 간절히 고민하는 모습을 담은 성장담.

> 무책임한 남편 그리고 철없는 자식을 위해 처절하게 헌신해 온 엄마의 모습과, 성실한 신랑 그리고 자랑스러운 자녀와 무탈히 지내온 이모의 얼굴을 떠올리며, 진진은 그 간접 체험에 자신을 불완전하게나마 투영시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고요히 숙고했으리라 추측한다. 그리고 평생을 함께할 이를 고르는 인생의 양 갈림길 앞에 놓여 불안하고도 막연한 그 행로를 홀로 결정해야만 하는 그녀를 응시하며, 독자들 역시 자신이 간직한 삶의 실존적 질문들에 관해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하고 또 대답하게 된다.


3) 투명하고도 미끄러우며 추상적이면서도 휘발적인 어떤 개념들을, 불투명하고도 끈적이며 실제적이면서도 침전적인 여러 문장들로 탈바꿈하는 작가의 신기(神技).

> 꽤나 화려하게 적었지만, 이러한 형용사들로 <모순>을 이루는 문장들의 찬란함과 날카로움을 제대로 묘사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유독 감명 깊었던 순간들을 편집 없이 아래에 옮기는 것으로 감상을 갈음한다.

"젊어서는 그렇게도 넘치던 한숨과 탄식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삶에의 모진 집착뿐이다."
"인생이란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습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특히, 나는 아래의 글귀를 너무나 좋아한다.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는 거대한 불행 앞에서 차라리 무릎을 꿇어 버리는 것이 훨씬 견디기 쉬운 법이다."


이외에도 이 소설에 대해 하고픈 말은 넘쳐흐르지만, 나의 한계로 인해 이곳에서의 기록은 이쯤에서 멈춘다. 다만, 글을 다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겨, 마지막으로 이를 짧게 남긴다. 이제 그 시절 엄마와 이모의 나이가 되어버린 진진은, 과거를 후회하지 않을 만큼 행복한 오늘을 보내고 있을까.


2025. 03.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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