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힘들어도 한 번의 웃음으로 살아 내셨다
달동네에서의 또 하나의 슬픔은 물이었다. 수도 배관이 없었서 마을 아래 공동수도관에서 물지게를 지고 날라야 했다. 출산 후 물은 아이나 산모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아이 기저귀와 목욕, 밥, 빨래… 살기 위해서는 물이 꼭 필요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까마귀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물지게를 어깨에 지고, 엄마는 계단길을 뛰어옵니다."
섬집 아기의 가사처럼 아기를 재워 놓고 물을 길으러 가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초조했다. 계단은 흔들리고, 다리에는 힘이 없었다.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비틀거리면서 지고 오면 물통에 물은 반도 안 남아 있었다.
"산후조리는 안 하셨어요?"
나는 완전 딴 나라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물었다.
"산후조리가 어딨어. 누가 있어야지 조리를 하지. 우리 엄마는 동생들 챙겨야 하니까 그냥 갔고, 너네 아빠는 일한다고 다시 인천 가고, 아무도 없었어. 내가 안 하면 아무도 해주는 사람이 없었어. 그러니까 죽기 살기로 하는 거야. 그래도 아기가 잘 자니까 얼마나 고맙던지. 너네 누나가 효녀였다."
엄마의 목소리는 여전사처럼 단호했다.
그러다 며칠 후 외할머니가 오셨다. 물지게를 나르는 어머니를 본 후 외할머니의 입에서 또 한바탕 욕이 쏟아졌다.
"이런 미친년을 봤나. 아니 출산하면서 자궁도 찢고, 피도 그렇게 흘려서 정신을 잃었던 년이 지금 물지게가 웬 말이야. 너 그러다 죽어, 이 년아. 아직 자궁이 열려 있어서 지금 무거운 것 들고 무리하면 나중에 골병 나는 거야. 왜 이러고 있어. 물은 시켜 먹으면 되지."
그 당시에도 배달서비스가 있었다. 돈을 50원인가 주면 아래에서 물을 길어다 주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생활비도 잘 안 줘서 50원은 그 당시 어머니에게는 큰돈이었다.
며칠 후 그나마 얼마 없던 돈도 잃어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그 당시 달동네는 경찰에 쫓기는 불량배들이 숨어 들어오기도 하고, 살기 어려워서 집을 터는 생활형 도둑도 많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자고 일어났더니 비닐창문은 찢어져 있었고, 돼지저금통의 배는 갈라져 있었고, 가방 속 지갑은 대문 옆에 버려져 있었다. 새벽에 도둑이 들어왔던 흔적들이었다. 아기는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고, 하루하루 삶이 고단했던 어머니는 도둑이 왔다 간 사실을 전혀 몰랐었다. 50원 아끼려고 물지게를 졌던 시간들이 허탈하기도 했지만, 아이가 안 다치고 본인도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 온 아버지에게도 어머니는 "불행 중 다행이에요. 만약 그때 나나 아이가 깨어 있었다면... 생각만 해도 정말 끔찍해요"라고 말했다. 무엇인가를 기대했다기보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그냥 괜찮냐는 말 한마디 듣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참~ 다행이다"였다. 누가 봐도 비꼬는 말투에 눈빛은 차가웠다. 어머니는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이 인간에게 뭘 바란 것이냐'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얇고 짧은 숨을 여러 번 내뱉으셨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자신이 어렵게 번 돈을 훔치는 합법적인 도둑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망한 친정 식구들에게 돈을 갖다주고, 이제는 자느라 도둑까지 맞았으니 말이다. 돈은 그렇게 아버지의 마음을 옭아맸다. 삶을 지긋지긋하게, 두렵게, 한숨 나오게, 속 좁게, 비겁하게 만들었다.
"그 힘든 곳에서 살 수 있었던 힘은 뭐였어요?" 24시간이 힘들어도 1초만 웃는 일이 생겨도 살아진다는 말이 생각나 여쭤보았다.
"그냥 울면서 가슴 치면서 살았어. 그러다 아이가 웃으면 나도 잠깐 웃는 거였지. 그렇게 살다 보니 살아지더라. 자식 때문에 죽지 못하고 살았어. 자식이 없었으면 삶을 포기했을 거야. 그런 생각은 수도 없이 했으니까."
역시 어머니를 살린 것은 자식이었다. 부모들은 '자식을 키운다' 하지만 자식도 부모를 살린다. 어린 자식을 키워내야 한다는 책임감은 가슴을 치면서까지 삶을 살아내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가슴을 치며 울었지만, 아이의 미소를 보며 살아내셨다.
3년 뒤 아버지가 가게를 서울로 옮기면서 그 높은 곳에서 내려오실 수 있었다.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서울신문 사진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