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과 슬픔과 외로움이 머물던 곳, 달동네

by 솔솔솔파파

1960년대 후반, 도시 개발과 이촌향도가 시작되면서 도시는 눈부시게 변했다. 하지만 봉천동 달동네에는 아직도 장화 없이는 오르기 힘든 진흙 계단이 있었다. 도시가 성장할수록 가난은 점점 더 높은 곳으로 밀려났다.

달동네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세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천장 틈새로 달이 보여서, 두 번째는 달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어서, 세 번째는 달세를 내는 집들이 많아서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달동네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피난처였다.


어머니의 신혼 생활 두 번째 집이 바로 이곳이었다. 이곳은 어머니의 신혼집이었지만 신혼의 달콤함은 없었다. 여전히 주어지는 운명에 버티고 또 버텨야 했던 곳이었다.


"옛날에 거기 살 때 사람들 사이에서 하던 말이 있었어. '기집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포장되지 않은 높은 지대라서 한 번 비가 오면 길이 너무 질퍽해서 다니기가 불편했다는 뜻이야.

계단은 등산할 때 산에 놓인 돌계단과 비슷한데, 비가 오면 흙이 쓸려 내려가서 계단이 들썩들썩했어. 사람들은 대부분 판자나 천으로 만든 집에서 살았고, 그나마 내가 이사 간 집은 정식으로 지어진 2층 집이었어.

1층은 주인 세대가 사는 곳인데 우리는 돈이 없어서 못 들어가고 세를 줬어. 그리고 2층은 두 세대가 살 수 있는 구조였어. 한 개는 우리가 살고, 다른 한 개는 가게를 하려고 했지.

너네 아빠는 나보고 만화방을 해서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원했지만, 난 그때 임신도 했고 친정이 너무 못 살아서 신경 쓰느라 장사할 마음이 없었어. 난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거길 벽으로 막고 방을 만들었지. 그래서 보증금 받고 세를 줘버렸어.

당시 인천에서 일하던 너네 아빠는 며칠 만에 집에 와서 그 꼴을 보고 엄청 화를 냈어. 자기랑 상의도 없이 방을 내서 세를 내줬다고. 그리고 그 보증금은 망해서 거리에 나앉은 친정집 임시 거처 마련해 주는 데 썼다고 하니까 말이야. 얼마나 열받았는지 그다음부터는 생활비도 안 주고, 몇 주씩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어."


가난했던 친정을 외면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결혼 시작부터 아버지와 마찰을 빚었다. 그것이 달동네에서의 삶을 더욱 힘들고 외롭게 만들 줄도 모른 채 말이다.


산달이 되어 어머니의 배는 아파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걱정은커녕 무관심했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짐을 싸서 병원에 간다는 말만 남긴 채 집을 나왔다. 그리고 버스 막차를 타고 다니던 산부인과에 갔다.

병원 관계자는 여자 혼자서 임신한 몸으로 머리에 짐을 지고 오는 모습을 보고 몇 번이나 물었다고 한다.


"정말 혼자 오셨어요?"

"네."

"아니, 남편 없어요?"

"있어요."

"친정 엄마는?"

"있어요."

"그런데 첫 애인데 어떻게 혼자 와요?"

"..."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1박 2일 진통하느라 집에는 기별도 못 했고, 혼자 산통을 이겨내고 있었다.

하룻밤이 지나도 오지도 않고 기별도 없는 아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아버지는 외할머니에게 연락을 해서 아내가 애 낳는다고 집을 나섰는데 아직 기별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병원도 모른다는 말에 한바탕 욕을 얻어먹었다.


결국 외할머니는 주변의 산부인과를 다 뒤져서 어머니를 찾아내셨다. 어머니는 여전히 산통 중이셨고, 밥을 갖다 주는 식당 아줌마를 보며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밥도 못 먹은 채 30시간 넘는 진통에 시름시름 쓰러져 가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그런 어머니를 보고 "왜 만들기는 둘이 만들고, 낳는 것은 너 혼자 이러고 있어?"라며 화를 내셨다. 그리고는 아이 10명을 낳은 프로답게 어머니를 보살폈고, 어머니는 불행 중 다행으로 첫째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첫째 아이는 2.6kg으로 인큐베이터에 들어가는 것을 간신히 면했다. 그리고 딸이었다. 아버지는 다음 날 소식을 듣고 늦게 왔고, 며칠 입원을 해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무시한 채 집으로 어머니를 데리고 왔다. 외할머니도 딸이 낳은 자식이 딸이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높고 높은 달동네를 다시 올랐으며, 그날은 그 계단이 더 높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아버지는 다시 일하러 인천에 가셨고, 어머니는 다시 달을 보며 외로움과 서러움과 싸우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다음 편에 계속)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https://blog.naver.com/telience92/222177944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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