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랜 사진 한 장
아무리 카톡을 보내도 답장이 없자 손영찬은 경윤 대학병원에 도착해 백광현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로 부스스한 백광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기는 멀 여바? 인마! 잤나? 내 병원 왔다~ 얼른 문 열어 도~"
"어? 뭐라고?"
"인마 이거 팔자 좋네! 병실 동 앞인데 문이 안 열리~문 열어도! 얼른~"
공항에 내리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달려온 손영찬이었다.
"야~~ 미리 카톡이라도 보내지? 잠시만~ 바로 나갈게~"
병실을 나와보니 손영찬이 뭐가 그리 급했던지 한 손에 캐리어를 끌고 여행 복장 그대로 입구 앞에 서 있었다. 병실동 문은 출입증이있어야 열렸기 때문에 못 열고 백광현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카톡 보내마 읽기는 하나? 전화기 확인해바라. 내가 몇 통이나 보냈는지? 행님이 왔으마 빨리빨리 나와야지 인마~머 하고 자빠졌다 인자 나오노?"
"야가~아직 시차 적응이 안 돼서 카나? 와이리 말이 많노? 행님을 오랜만에 봤으마 큰절부터 올릴 일이지?"
백광현도 손영찬을 따라 사투리를 섞어가며 농담을 했다. 그러면서 슬쩍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카톡이 10통이나 와있었다.
"네~형님! 절 두 번하께예~ 두 번 받으소!"
절대 지지 않는 손영찬이었다.
"아이고. 됐다. 됐어! 고마. 내가 잘못했다~ 피곤할 건데 저리 가서 좀 앉자~"
손사래를 치며 백광현은 손영찬을 데리고 면회실로 향했다.
면회실에는 오후 시간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었다.
"야! 근데 이기 먼 일이고? 아스팔트에 대가리를 쳐 박았다고? 야 니 진짜 골로 갈 뻔했네?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다~ 하나님이 보우하사다~ 교회 열심히 다니더만~ 하나님이 지키 주셨네~ 사고 낸 사람은 머라 말 있더나? "
"그래! 다들 그렇게 얘기한다~이만하길 다행이라고~하나님이 지켜주셨다고! 사고 낸 사람은 미안 하다 하지...다 보험 처리해주겠다 하고...“
“야! 이기 미안하다 해서 될 일 이가? 보험 처리는 당연한 거고! 한 번 찾아와 보지도 않더나?”
“뭐... 그 사람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서로 운이 없었던 건데 뭐... 괜찮다. ”
“아이고... 예수님 나셨네... 예수님 나셨어... 니는 다 안 좋은 데 그게 젤 안 좋아. 혼자 사람 좋은 척 하는 거.”
“그래. 그렇다 치고, 그나저나 영찬아~"
"와? 징그럽구로 와 이름을 불러쌌노? 와?"
"현미래 말이야?"
"......... 미래? 그래~와?"
현미래 말이 나오자 그렇게 말을 많이 하던 손영찬도 잠시 뜸을 들였다.
"나 진짜 기억이 1도 없어~ 근데 걔가 우리 동기라고? 그것도 같은 과?"
"음..... 그래! 맞다! 니가 와 미래만 기억 못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가 우리 동기 맞다. 같은 과"
"그래. 그럼, 미래 말이 맞았네~근데 나는 왜 기억이 1도 없을까?"
"심지어 니하고 미래하고 억수로 친했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그래? 그 일이 뭔데?"
"마~ 댔다!! 좋은 추억도 아닌데 알아서 뭐할라꼬? 알아서 좋을 거 하나도 없다!!! 기억이 없으마 다행이다 생각하고 살아라. 그냥 원래 모르는 사람이다 하고... 어~~여~~빵이나 묵자 배고프다~"
하면서 가방 안에서 빵을 한가득 쏟아 놓는다.
"야~~뭐 이런 걸 다 사 왔노? 안 그래도 피곤할 건데~?"
"안 샀다! 오다 주웠다! 그냥 묵자~"
“야가 말을 하다마노? 무슨 일이 있었냐니까? 먹는 거는 먹는 거고, 말해 바라! 얼른”
백광현의 말은 들은 체도 안하고, 손영찬은 배가 고픈지 허겁지겁 먹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뭔가 가 생각난 듯이 얘기했다.
"제수씨는? 오데 갔노?"
애가 타는 백광현과는 달리 손영찬은 딴청을 피웠다.
"끝까지 말안하네. 언젠간 알게 되는 날이 오겠지. 애들 엄마는 아까 왔다가 속옷이랑 이것저
것 챙겨 주고 다시 갔지~ 학원도 챙겨야 하고 애들도 챙겨야 하고~~"
손영찬이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자 백광현도 포기하고 손영찬이 묻는 말에 답했다.
"아들은 잘 커제?"
"너무~~잘 커지? 만날 전쟁이다~ㅋㅋㅋ 너는 그래 혼자 사니까 좋아? "
"좋지~~세상 편하고~~ㅋ"
"그래~?우리 아들 꿈이 너다! 돈 많은 백수!! ㅋㅋ주식은 좀 올랐냐?"
"야가 머라카노? 백수라니? 전문투자자한테 ㅋ! 주식은 인자 안 쳐다본다~가만히 두면 배당금 들어온다 아이가~ 그거 가지고 묵고 사는 기지! 미국 주식 쪽에 투자한 기 제법 재미가 쏠쏠해~!"
"암튼 부럽다. 이놈아! 근데 넌, 그때 이혼한 거 후회 안 하냐?"
"우린 너무 달라! 로또도 이런 로또가 없는 기라! 너무 안 맞아~ 잘 갈라섰지!"
"그래도 희영이가 너 생각해서 무용과 이쁜 후배 소개해 줬는데~좀 맞춰보지 그랬냐?"
"지희영이? 희영이 생각하마 미안하긴 하지~근데 둘을 위해서도 이기 더 좋아~ 니는 별문제 없이 잘 살제? 제수씨한테 잘 해라~ 제수씨 같은 사람 없다! 그나저나 니 결혼한다고 제수씨 첨 소개시키줄때 내 깜짝 놀랬다 아이가!"
"왜? 뭣 땜에? 너무 예뻐서?"
"지랄! 문디! 그래! 그렇다 치고 그것도 그런데 미래랑 똑 닮아서~ 너는 못 느낐나? 미래 봤다 아이가?"
"나도 조금 놀라긴 했지! 둘이도 조금 놀라는 듯하고~"
"니는 기억 못 할지 몰라도 그때도 내가 니한테 미래 얘기 한번 했었다~ 근데 니가 그때도 전혀 기억 못하더라!! 그래서 그때 그 일이 니한테 큰 상처가 됐는 갑다 시퍼 그 뒤로 미래 얘기는 입 밖에도 안 꺼냈다 아이가! 미래 그 일 있고 자퇴하고 다시 시험 쳐서 의대 갔다는 소리는 들었다. 원래 머리는 좋은 아 아여서 단번에 붙었다 카대~!"
그러고는 가방에서 낡은 다이어리 하나를 꺼내더니 그 안에서 다이어리보다 더 낡고 빛 바랜 사진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기 미래랑 니랑 내랑 희영이랑 찍은 내한테 남은 마지막 사진 인기라! 혹시나 이런 날이 올 수도 있을 거 같아서 안 버리고 가지도 댕깄다 아이가? 바라 제수씨 젊었을 때랑 똑 같제?"
백광현은 사진을 집어 들고 쳐다보았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아내 윤예지와 닮은 여자가 사진 속에 자기랑 너무나 다정하게 앉아 있었다.
"그렇네....... 근데 나는 왜 기억이 하나도 안 나지?ㅜㅜ"
갑자기 머리가 쪼개질 듯이 아파오는 백광현이었다.
"뭐야? 두 분이서 뭔 얘기를 그렇게 진지하게 하게 하고 계세요? 영찬 씨 맞으시죠?"
언제 왔는지 윤예지가 와서
손영찬을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아~네~안녕하세요? 제수씨! 제수씨 방부제 미모는 여전하네 예~"
"에고~ 영찬 씨 실없는 농담도 여전하시네요~ 감사해요~"
"어~ 어떻게 왔어? 학원은?"
백광현은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사진을 떨어뜨릴 뻔했다. 사진을 얼른 감추며 아내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놀라? 내 욕이라도 하고 있었어? 자기 걱정돼서 왔지! 오는 길에 전화했었는데 전화도 안 받고~ 병실에 갔는데 아무도 없길래 혹시나 하고 와봤지~! 영찬 씨가 와있는 줄은 몰랐네~ 근데 손에 든 건 뭐야?"
"아~아냐....... 아무것도............"
백광현은 놀라서 말을 얼버무렸다.
"뭔데 그래? 무슨 사진 같던데..........."
역시 촉이 남다른 윤예지였다.
"아~그거 제가 여행 갔다 찍은 사진입니다. 노출이 쪼매 있어가 보시면 눈 베리실겁니다~ㅎㅎ"
손영찬이 끼어들어 무마시켰다.
"뭐야? 알고는 있었지만 둘이 그런 사이셨어?"
"ㅎㅎ죄송합니다. 제가 인마한테 좀 집착을 합니다."
"ㅎㅎ넵~딱 여기까지만 해주세요~~"
"아이고~네~네~~저는 이제 그만 가보께예~여행갔다 오면서 연락받아 가 바로 왔더니 피곤하네예~"
손영찬이 얼른 자리를 피하려고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아~네! 피곤하실 건데 와주셔서 감사해요"
"아닙니더! 인마 친구라고는 나밖에 없을 긴데 와 봐야죠~ 마이 놀라셨을 긴데 넘 걱정마시고예 고생하시겠네예~"
"그래~와줘서 고맙다~"
"조심해서 가세요~"
"네~네~들어가이소~"
그렇게 손영찬이 가고 윤예지가 백광현에게 물었다.
"둘이 뭔 얘기가 그렇게 심각해?"
"아! 아니야....... 나 사고 난 얘기랑 영찬이 녀석 여행 다녀온 얘기지 뭐........."
"그래~?그럼 자기도 피곤할 건데 쉬어~ 간식 좀 사다 뒀으니 배고플 때 먹고~ 나도 가볼게~이따 저녁에 못 올 거 같아 시간 나서 잠시 와본 거야~"
"어~ 그래 잠시라도 앉았다 가지?"
"아니야~가 봐야 해~ 곧 애들 올 시간이야~"
그렇게 백광현과 헤어지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윤예지의 머릿속에는 온 통 아까 본 사진 생각 뿐이었다.
'뭐지? 얼핏 봤지만 분명 날 닮은 여자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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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봄비 -제12화- 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