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함께한 오지를 뒤로하고 오아시스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평화롭기를...

by 다문화인

아픔을 함께한 오지를 뒤로하고 오아시스로

6개월의 긴 파견을 무사히 마쳤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사작전은 미군 주도 연합군에 의해 전개되었다. 미래 전쟁은 두 국가만의 전쟁이 아니라 여러 국가가 협력하는 연합작전이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연합작전에서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언어능력이다. 모든 회의, 작전 수행, 결과 보고 등을 논의할 수 있어야 하므로 영어 구사 능력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실감했다.




연합군에서는 약어가 빈번하게 사용되는데, 때로는 약어를 만든 미군들조차도 그 의미를 모를 때가 있다. 예를 들어, OBL이라는 약어는 뭘까?


9.11 테러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의 머리글자로 쓰인다. 우리가 뭉뚱그려 다 약어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각 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두문자어頭文字語다.


약어는 단어를 줄여 표현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information을 info, omnibus를 bus로 줄이는 식이다.



다른 흥미로웠던 점은 전투복 미국기 마크, 매의 눈으로 봐야 알 수 있다. 우측 어깨에 부착된 성조기는 자세히 보면 좌우가 바뀐 꼴이다.

원래 모양보다는 국기가 전진해야 한다는 지향적인 개념을 반영한 것이라는데, 미군답다.



군사작전의 성공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전장 스트레스 해소다. 미군은 구성원의 육체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대규모 헬스장과 휴게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정신적 스트레스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군종장교를 두고 있다.


종교적인 이유로 대대급과 특수부대의 대급에도 군종장교를 배치해 장병들의 면담과 격려를 담당하고, 기도를 통해 정신적인 안정을 준다.



주한 미2사단에서 근무할 때 사단 의무참모가 중령이었고, 당연히 의사였다. 한 번은 사단장 이하 모든 참모부 인원이 포함된 조조 행군에 그 의무참모도 군장을 메고 참여했길래, 우리 군의 관행을 염두에 두고 그에게 “의사니까 행군을 안 할 수 있지 않냐?”고 물어봤다.


“그렇게 하면 참모장이 내 엉덩이를 걷어찰 거야.”라며 그가 웃어넘겼다. 이 경험은 강군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




파병은 군인에게 소중한 경험과 미래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군인은 국가 안보를 책임지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숭고한 임무를 맡고 있다.


따라서 평소에 충분히 훈련되어야 하며, 전장에서도 그 훈련을 바탕으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현재의 전쟁은 전환기적 성격을 띠고 있다. 첨단 무기를 사용해 병력을 대체하는 대리전쟁과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지역에서의 게릴라전이 병행되고 있다.


이러한 특수한 전장에서의 경험은 파병된 군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체험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더 많은 인원이 이러한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파병 마지막 날, 미군으로부터 육군성 장관 표창Army Commendation Medal을 받았다.




나를 곁에서 늘 도와줬던 오마르 통역, 사거리의 교통경찰관, 미래 실크로드의 거상이 될 바자르 꼬마, 내가 머무는 안가 경비원 등 순박하고 착해 보이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왜 수십 년간 전쟁 속에서 살아야 할까, 자신들 힘이 아니라 외세의 개입으로 살 수밖에 없을까?


그러면서 이들은 심적으로나 물적으로 많이 어렵고 아픈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이 너무 오래 지속되고 그러면서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는 좌절하여 극단적인 쪽으로 빠지기 쉽게 된다.


안타까운 악순환이 된다. 우리도 비슷한 과거가 있었지만 벗어났듯이 이들도 극복하고 평화를 되찾기를 바랄 뿐이다.



귀국길은 처음 입국할 때와는 다르게, 카불 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예상하지 않은 바는 아니지만 공항 검색대에서 경찰이 캐리어 내용물로 시비를 건다.


설명을 반복해도 막무가내였고 탑승 시간만 계속 다가왔다. 난감하게 왜 이러는 거야, 군복을 입지않고 있어서 그러는 건가.


하는 수 없이 그동안 협업을 해 온 내무부 라시드 장군에게 전화로 도움을 청해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여튼 들어가기도 힘든 나라지만 나오기도 어렵다.



카불에서 두바이까지는 유엔 비행기를 이용했다. 두바이 국제공항 착륙 직전, 상공에서 내려다본 두바이 시내는 황금빛 모래와 현대적인 고층 건물이 조화를 이루며 광활한 사막 속에 빛나는 오아시스처럼 보였다.


거대한 빌딩이 줄지어 있고, 그 주변으로는 마치 미로처럼 펼쳐진 인공 섬들과 초록빛 골프장이, 아라비아만의 푸른 물결과 함께 독특한 풍경을 자아냈다.



오랜 군 생활과 분쟁지역을 따라 세계를 돌다 보니, 웬만한 비행기는 거의 다 타본 것 같다.


조종사로서 내 본업이었던 군 헬기부터, 우리 군의 수송기, 서해에서 연합 해상사격 시에 함께 탔던 미군 헬기, 파병 중 항공정찰을 위해 탑승했던 유엔 헬기, 회의에 참석하러 갈 때 이용한 유엔 고정익 비행기까지. 미군 수송기와 분쟁지역 현지 항공사 프로펠러 여객기도 경험했다.


예전 공수 훈련 때는 펼쳐진 낙하산을 타고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하늘에서 뛰어내리기도 했으니….



두바이에서 경유하는 동안, 아라비아만의 따뜻한 바다에 몸을 담갔다. 바다 건너 이란은 페르시아만으로 부르는 그 바다. 이웃 나라끼리는 종종 지명으로 다투는 듯하다.


우리는 동해, 일본은 일본해라고 하는 것처럼. 그곳에서 맞닥뜨린 사막의 풍경은 신기하면서도 이국적이었다. 우리 나라에는 없는 사막, 끝없이 펼쳐진 모래 언덕과 건조한 공기 속에서 난생처음 사막을 보고 걸었다.




짧았던 경유지 시간을 뒤로하고, 국적기를 타고 마침내 서울로, 그리고 가족에게 돌아왔다. 기뻤다.


아프가니스탄은 아직도 우리 정부에 의해 여행 금지국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언젠가 이 땅이 평온하게 안정되어 다시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해본다.


그때가 되면, 전쟁의 상흔을 넘어서서 사람들의 웃음과 평화가 가득한 아프가니스탄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앗싸라무 알레이꿈!”(당신에게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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