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좁다: 다시 만난 특별한 인연들

"It's a small world!"

by 다문화인

‘…… 직업군인이 되면 직업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학위취득 등 상위 교육의 기회가 열리고,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면서 견문을 넓힐 수 있다. ……’


영어반 교육을 받을 때 미군 영어교재에 이렇게 쓰여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미군은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가능할까?' 당시 우리 군에게는 세계 여러 곳을 다닐 수 있다는 부분이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다.




그 후 2년여 동안 주한 미 2사단에서 일하는 귀한 기회를 얻었다. 의정부 캠프 스탠리에서 카투사를 관리하면서 미군의 역사, 에티켓과 문화를 알 수 있었고, 나 또한 우리의 문화를 그들과 함께했다.


미군 동료들과 프로야구, 삼군사관학교 체전 경기를 관람했다. 의정부에서 가까운 육군사관학교 견학을 안내하기도 했으며, 설이나 추석 명절에는 집으로 초대해 한국 음식을 같이하고 윷놀이를 함께 즐겼다. 약간 서먹했던 사람과 더 친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휘관과는 아내가 싸준 김밥을 나눠 먹었던 기억도 있다. 처음 먹어보는데 특별하고 맛있다면서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해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미군 지휘관의 상징이라 할수있는 코인

한 개인이지만 우리 문화 홍보대사, 외교관이라 생각하며 친선과 우정을 위해 보탬이 되고자 했던 내 모습이었다.



이듬해에는 캠프 레드 클라우드에서 사단 연락장교로 근무하면서 한미 동맹 증진을 위해 한국군과 미군 간의 군사 협력에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사단장이었던 아너레이 장군과 우리 군 측 지휘부 간의 교류를 조력하면서 동맹의 중요성을 경험했다. 일하는 조직이 위로 갈수록 사명감이랄까 책임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이제부터는 우리나라를 벗어나, 2006년에는 한미 동맹의 일환으로 이곳 카불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항구적 자유 작전을 통해 전쟁과 테러의 현실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의정부에서 같이 근무했던 아너레이 장군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아프가니스탄을 시찰하러 왔다가 재회하게 된 것이다. 어찌나 반갑던지 같이 웃으며 한참을 얘기하고 사진을 찍었다. 아, 세상이 좁은 것 같다.



2013년 용산 한미연합사 근무할 때도 2006년 카불에서 같이 근무했던 린보 소령과 해후했다. 서울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 이 친구는 내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힘들어할 때 늘 명랑하게 재치 있는 대화로 기운을 북돋아 주었던 사람이었다.


상처했던 그는 매정한 전장에서 자신을 다잡기 위해서라도 미소를 머금으려고 애썼던 것 같다. 그때처럼 이번에도 여전히 쾌활했고, 한국 생활에도 잘 적응했다.


한번은 영양탕을 먹자고 해서 데려가 사주기도 했다. 뭐든 생소한 것을 해보려는 친구다. 어쨌든 ‘세상은 참으로 좁다!’(It's a small world)


그 외에도 여러 동료가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소넨 육군 소령은 내가 카불에 처음 적응하던 시절, 힘들어하던 나를 따뜻하게 챙겨 주었던 사람이었다.


워싱턴에 산다는, 전형적인 백인으로 잘생겼다. 하루는 지나가다가 벤치에 앉아있던 나에게 다가와 괜찮냐고 묻고, 같이 기도하자고 했던 그의 진심 어린 말과 따뜻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캐스코비치 해병 대위는-나는 해준 게 없는데-나를 멘토로 여기며 잘 따랐던 친구다. 그의 아버지가 1972년 춘천에서 주한미군 헬기 조종사로 근무했던 덕에 한국과 우리 문화를 좋아했다.


내가 아프가니스탄을 떠날 때 그에게 태권도 도복을 선물했는데, 주짓수 유단자였던 그가 얼마나 기뻐했던지 아직껏 기억난다. 해병 정신을 지닌 그는 긍정과 돌진의 대명사면서도 이 전쟁의 명분에 대해 고뇌하는 마음이 섬세했다.


지금은 미국 샌디에이고에 살고 있으며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근래 2025년 12.3 비상계엄 사태 직후 내게 괜찮냐고 묻기도 했다.




이렇듯 전 세계에서 만난 글로벌 동료들과의 인연은 인생에서 소중한 경험 중 하나였고 세상이 좁다는 것을 실감 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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