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먹어야 제맛
바그다드 스테이 할 때 이색적이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야자나무 열매였다. 한여름 기온이 40도 중반에서 후반까지 치솟고, 심한 경우 50도를 넘나드는 이곳의 풍경은 그야말로 사막 한복판처럼 뜨겁다. 그 열기를 견뎌내며 우뚝 서 있는 야자수가 가득한 바그다드의 도심 속에서, 나는 야자수 열매가 대추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이전에 서부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서 봤던 야자수는 커다란 코코넛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기 때문에 - 일부는 기름야자가 열리는 팜나무도 있지만 - 이곳 야자수 열매가 대추라는 것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바그다드의 거리마다, 집 앞마당마다 야자나무가 늘어서 있고, 풍성하게 여물어가는 대추들이 걸려있다. 이 대추, 영어로는 아주 간단하게 date[데이트]라고 불린다.
어느 날 정부 면담을 하였을 때, 협력 담당 국장이 나에게 대추 열매를 선물로 건넸던 일이 있었다. 말리지 않은 생대추는 당도가 그리 높지 않았지만, 그 순수한 자연의 맛이 느껴졌다. 이후 말린 대추도 먹어보았는데, 개인적으로는 말린 대추 맛이 더 나았다. 말린 대추는 아주 달콤하고 씹을수록 그 달콤함이 배어 나왔다.
대추를 활용한 다양한 제품이 있다. 견과류를 함께 넣어 만든 대추 간식이나, 초콜릿으로 감싸 더욱 달콤하게 즐길 수 있는 종류도 있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맛있는 건 본디 대추 자체였다. 특히 '메드줄'이라는 품종은 우리나라 대추의 두 배가 넘을 정도로 컸는데, 사막에서 유목민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소중한 식량이었을 것이다.
몇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로 든든하며, 섬유질이 풍부해 소화에도 좋고, 비타민C와 철분, 엽산이 들어 있어 빈혈에도 이롭다. 옆에서 사무실 직원 싸바가 남성에게 좋다고 엉큼하게 웃으며 말한다.
이라크 사람들 대표적인 먹거리 중 하나로는 대추 엑기스를 곁들인 ‘싸문’이라는 빵이 있다.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버터나 치즈에 엑기스를 발라 먹으면 그 맛이 더욱 풍부해진다. 빵은 정말 그 모양이나 두께, 색 정도가 다를 뿐 어딜 가나 있는 세계적인 양식이다.
특히, 티그리스강변의 화로에서 구워내는 물고기 '마스코프'는 이라크의 대표 요리 중 하나로, 고급 요리인만큼 드물게 손님을 대접할 때 나온다. 사방이 사막뿐인 지역에서 얼마나 귀하겠는가, 물고기가!
잉어를 올리브유와 강황, 타마린드 향신료로 밑간 한 후 그릴에 구워내는 이 요리는, 그 옛날 메소포타미아 문명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적인 음식이다. 마치 한강이 서울을 가로지르는 것처럼, 티그리스강이 바그다드를 지나 흐르는 모습을 바라보면 역사의 흐름이 살아 숨 쉬는 듯한 감동이 밀려온다.
이라크에서 또 하나 새롭게 다가온 것은 양고기였다. 예전에 카슈미르에서 먹었던 양고기는 질기고 냄새도 났는데, 이곳에서는 간을 적절히 맞추고 맛나게 조리한 덕분인지 부드럽고 풍미가 가득했다. 현지에서 양고기를 다진 뒤 다양한 채소와 함께 버무려 구워낸 케밥이나, 갈비를 통째로 구운 양갈비는 그 자체로 별미였다.
병아리콩을 갈아 만든 '후무스'나 '만사프' 같은 전통 음식을 잊을 수 없다. 특히 만사프는 귀중한 손님에게만 대접하는 요리인데, 향신료를 넉넉히 넣은 쌀과 양고기를 섞어 쪄낸 다음 요구르트를 부어 먹는다. 어떤 이는 밥 대신 납작한 빵 위에 고기를 얹고 요구르트와 곁들여 먹기도 한다. 고기와 요구르트가 어우러진 깊고 진한 맛이 일품이었다.
무관 부임 전에 10여 개의 포크, 나이프, 스푼 등 커틀러리 셋으로 테이블 매너 실습까지 했지만, 결국 맨손으로 먹었다. 음식 맛은 손맛, 하하. 현지인과 가까워지기 위해 중요한 점은 바로 그들의 문화와 풍습을 존중하고 따르는 것으로 생각했고, 음식 문화 역시 그중 하나였다.
중동 지역 이슬람권에서 빠질 수 없는 '할랄حلال' 음식은, 아랍어로 '허용된 것'을 뜻한다. 반면, '하람حرم'은 허용되지 않은 것을 말하며 대표적으로 돼지고기와 초코파이 포함 돼지로 만든 모든 음식을 말한다. ‘너희에게 금지된 것은 죽은 고기, 피, 돼지고기, 그리고 알라 외의 다른 이름으로 봉헌된 것이다’라고 이슬람 경전 꾸란에 이른다.
초코파이는 왜? 파이 속 하얀 마시멜로에 돼지 껍데기의 젤라틴 성분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이슬람 국가로 수출되는 초코파이에는 소가죽 추출 젤라틴을 마시멜로에 넣는다고. 19억 명에 달하는 이슬람 시장을 놓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라크에서 지내면서, 그들의 음식과 문화 속에서 진정한 소통과 교류를 경험했다. 사막과 강,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곳에서 맛본 음식은 그 어느 것보다도 진미였고 특별했다.